*지난 4월 26일 알커먼즈와 가족구성권연구소 공동주최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다큐멘터리 <침몰가족> 상영과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다. 이어 알커먼즈에서 참가자들의 <재잘재잘>이 이어졌다. 당일 행사에 참가한 두 연구자의 감상을 나눈다. (연구자의 집 회원, 한디디)
침몰가족: 관계의 반경을 넓히는 실재를 목격하며
원은정 (아동 권리 연구자)
인디스페이스 <침몰가족> 상영과 인디토크 후 알커먼즈에서 가진 ‘재잘재잘’ 시간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지는 풍경 때문이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상대방의 말을 자세히 들으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내가 발견한 생각을 세심한 문장으로 전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이뤄졌다. 풍경은 왁자지껄해 보이지만 질서정연한 토의가 저절로 일어나고 있어서 별도로 ‘재잘재잘’ 시간을 가질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돌아가며 이야기해보면 좋겠다는 요청에 마련되어 있는 굵직한 간식을 먹고 후속토크 시간을 공표했지만 이내 곳곳의 재잘재잘로 돌아갔다. 그만큼 할 말이, 듣고 싶은 말이 많은 자리였다.
분명한 건, 이때의 이야기는 가족(가족주의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등)에 대해 아는 것의 나열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발견을 들떠서 아니 신나서 말하는 듯했다. 그렇게 들뜰 수 있었던 건, ‘침몰가족’의 실존 덕분이다. 발견은 ‘발견할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가능한데 같은 시선을 가졌을 거라고 신뢰되는 이들과의 대화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영화 <침몰가족> 그리고 동명의 책 <침몰가족>은 기존 가족 관계를 파괴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가 그러했을지도 모를 인간 관계 자유로움으로 회귀하는 것, 그래서 누구와도 어느 때고 연결될 수 있는 ‘관계 해방’이 가노 쓰치(영화 침몰가족의 감독이자 침몰가족에서 성장한 사람)의 어머니 가노 호코(쓰치의 어머니이자 침몰하우스스를 만든 사람)가 영화 속에서 쓴 글씨 ‘인간 해방’의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가 우리에게 어떤 기회를 주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해줬고, 지금 당장 침몰가족과 동일한 시도를 할 수 없더라도 실존을 같이 목격한 이들을 모이게 해주었다.
오랜 시간 가정 밖 청소년을 만나면서 가족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상처받는 아이들을 봐 왔다. 엄마, 아빠, 아들, 딸 구성으로 만들어진 포스터만 봐도 순식간에 소외되는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만큼은 얼른 어른이 되어서 ‘정상가족’을 절대 지키겠다고 말하곤 한다.(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이들에게 일본의 어느 가족은 학교 운동회 줄다리기에 20명이 등장하는 비혈연 가족이 있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커먼즈 재잘재잘에서 한디디는 이렇게 말했다.
“호코상(가노 쓰치의 어머니)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아니라 끌려들어가지 있는 힘이 있다.”
침몰가족을 통해 가족에 대한 반경, 규정된 관계에 반경을 넓힐 기회를 얻는 것이 분명하다. 재잘재잘에서의 시간에서 침몰하우스에서 오갔을 대화를 상상해봤다. 그렇게 연결되어 있는 ‘순간’이 ‘가족’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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