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끝으로 시대사와 생애사의 마주침을 시도해 보았다. 참가자들과 함께 2010년대를 어떻게 거쳐왔는지를 되돌아보았다. 짧게나마 2010년대의 여러 시점으로 거슬러 오르며 당시 서로의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았다. 이렇듯 과거의 일을 되돌아보는 것은 회상의 의미만을 갖는 게 아니다. 과거 자신의 행적과 사고를 이정표로 삼아 간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이 그 과거들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움직여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 이정표가 없다면 하루하루 쫓기며 살아가는 우리는 시류에 휩쓸려 다니게 될지 모른다.
2010년대의 시대사적 사건이라 할 만한 것들을 떠올려 보았다. 후쿠시마 사태, 아랍의 봄, 세월호 참사, 촛불집회, 트럼프 집권, 예맨 난민 입국, 코로나 팬데믹 등. 모두가 얼마간 기억은 나는 것들이다. 조금 더 기억을 세밀하게 탐사해보기로 하자. 가령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어디서 접했던가. 당시 무슨 생각이 들었던가. 어떠한 이미지가 기억에 남아 있는가. 그 이후 사태를 어떻게 지켜보았던가. 당시 생겨난 문제의식이 있었던가. 당시 일은 이후 어떤 상황에서 회상되었던가. 그 사건은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 체험과 기억과 회상의 방식은 서로 어떻게 다른가. 왜 그러한가. 이처럼 2010년대의 사건들을 매개로 다양한 방향의 기억들이 교착하고, 사고들이 얽히는 시간을 경험해 보았다. 그 결과는? 그건 답하기 어렵다. 이 사고 실험 자체가 기억으로 남아 당사자에게 어떤 식으론가 불현 듯 떠오를 것이다.
다섯 번의 수업 동안 교사분들은 높은 집중력으로 참여했다. 이 수업은 지식의 공유가 아니라 체험·사고·표현의 교차가 목표였기에 참가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격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주실지가 관건이었다. 첫 시간부터 수다장은 성사되었다. 같은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기에 서로의 이야기에 대해 공감대가 컸고, 또한 서로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당연히 달랐기에 서로의 이야기에 대해 호기심이 컸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생들에게 주로 질의와 요구를 하실 분들이 위치가 바뀌고, 더구나 자신에 관해 발언하셔야 했던 것도 수업이 즐거운 이유였던 것 같다. 듣다보니 교사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학생들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사분들은 교사분들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아내이고, 아빠이고, 환경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이고, 성실한 문학 독자이며, 고민 많은 한국사회의 성인이었다.
속해 있는 곳은 다르지만, 나 또한 고민 많은 한국사회의 성인이다. 이주간 이어진 수다장은 내게도 생활의 활력이었다. 수업의 말미에 참여한 열의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사분들께 강의자료, 사람-책-라디오 동영상, 패들렛 기록을 드렸다. 이 수업의 방법과 체험이 자신들의 학생을 대하다가 문득 떠오르신다면, 그때 찾아보실 수 있도록.
윤여일(제주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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