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자의집과 R커먼즈 합정
질문1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연집)은 “대학 안과 바깥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학술운동을 통해 실천적 아카데미즘을 복원[하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 커먼즈’를 만[들며] ‘연구안전망’ 구축을 위한 연구자들의 상호부조 방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월 26일 창립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연집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디디 어쩌다보니, 라고 말하는 게 제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8년간 한국에서 교사로 일했고 이후 12년간 외국에서 일과 공부를 하고 한국에 돌아왔더니 국내 학계와 거의 아무런 연결점이 없었습니다. 다만 경의선공유지가 제가 박사연구를 진행한 필드 중 하나여서 커먼즈 네트워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연집은 경의선공유지운동에 참여하면서 ‘커먼즈’를 학술운동의 키워드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커먼즈와 불안정성을 키워드로 공부를 지속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졸업 후 제 연구의 첫 번째 발표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 연집과 커먼즈네트워크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연집을 알게 된 것인데요, 당시 연집은 R커먼즈 합정(R커)이라는 공간을 기획하고 있었고, 이를 추진하시던 분들이 함께 할 사람을 호시탐탐 물색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 소속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백수 연구자였던지라 자연스럽게 마수에 걸려들었다고 할까요, 이렇게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보니, 라고 하지만 커먼즈라는 키워드가 연결해준 인연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질문2 선생님께서는 R커를 공동운영하는 반상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셨는데요, 먼저 R커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R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 R커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반상회의 일원이었던 동시에 연집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시는데요, R커와 연집의 관계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한디디 R커의 의미와 역할이 무엇일까요. 처음에 연집에 가게 된 것은 연집 산행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뒤풀이만 참석했는데요, 연집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때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연집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을 처음 뵈었는데요, 한 테이블에서 몇몇 선생님들이 R커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R커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다만 몇몇 분들이 공간을 만들면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재정은 어떻게 충당할지, 아니 도대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서로 다른 의견들을 개진하시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공간을 만드려고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집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였고, 어떤 맥락에서 어떤 공간을 구상하시는 것인지는 더더욱 몰랐습니다. 물론 2000년대 초반 수유너머에 있었으니까 연구자의 대안공간에 대한 경험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유너머와는 구상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연집 자체가 일종의 네트워크이고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기반을 갖고 여기저기 흩여져 있다는 점에서 수유너머처럼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생활과 공부를 함께 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또 이런 것을 기획하시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이후 R커 공간을 물색할 때 시간이 있으면 같이 가겠냐는 초대를 받았고 결국 지금의 공간을 함께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순간들 조차 우리에게 R커가 무슨 의미를 갖고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한 정확한 혹은 공통의 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같이 하게 되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R커에 대해 말을 하고 반상회에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면서 R커를 중심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논의했고 조금씩 활동이 만들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R커는 연집이라는 학술운동단체가 여러 연구자 관련법이나 제도를 바꾸기 위한 운동을 하는 동시에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갖는 다양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만나는 공간 혹은 장소를 만들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을까합니다. 연구하는 분야가 같은 것도 아니고 사회운동에 대해 같은 감수성이나 지향을 공유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연구가 좀 더 큰 의미를 갖기를 바라는, 커먼즈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이 만나는 장소를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R커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R커라는 구체적 공간이 있기 때문에만 가능했던 것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간은 사용되고 유지되어야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연루됩니다. 이 과정에서 R커가 아니었다면 마주치지 않았을, 공통의 이해관계도 없고 학술운동에 대한 상도 다른 다양한 세대와 서로 다른 위치의 연구자들이 마주친 것 같습니다. 이 공간의 의미나 역할은 그러한 마주침 속에서 상상되고 기획돼온 것 같습니다. 당연히 쉽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바쁘고 또 연구에 대해서도 커먼즈에 대해서도 연집이나 R커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R커라는 공간은 그런 차이들 속에서 느슨하고 느리지만 어떤 활동들을 만들게 해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R커에서 ‘재잘재잘’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학술장의 동료들이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완성된 연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닌,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이에 대해 조언을 들은 기회는 학계에서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식을 커먼즈로 함께 생산한다는 것은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만드는 것에서부터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또 R커에서는 함께 커먼즈, 도시 등을 키워드로 세미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연구자들, 불안정한 상황에서 연구를 지속해온 연구자들만이 아니라 근엄한 교수급(?) 선생님들까지 동료로서 만나면서 서로 구박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R커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현실이 만드는 구조적 억압과 경계들을 가능한 범위에서 횡단하면서 연구자로서 함께 한다는 것을 실험해보는 장, 이런 탈주의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활성화하는 활동들을 생산하는 인프라로 만들어져 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학술운동과 커먼즈
질문3 R커 운영 및 R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동 이외에도 연집에서는 예컨대 연구자 권리선언 추진, 연구자복지법토론회 진행, 연구자 공제회법 초안 마련 등을 포함한 연구안전망 구축 방안 연구 등의 활동들을 진행해왔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연구자의 권리 및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러한 활동들이 예컨대 1980년대 후반 한국 학술운동과는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관련하여 만약 이전의 학술운동과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디디 연구자 운동이 일종의 당사자 운동이 된 것이 오늘날 학술운동의 가장 큰 특징일 것 같습니다. 이전의 연구자 운동은 연구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위치, 즉 지식인이라는 특권적 위치와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아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도 연구자는 대부분 불안정 노동자입니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제도 안으로 진입하며 자원을 독점합니다. 결국 많은 연구자들이 무조건 실적을 만들고 자신을 잘 포장하여 어떻게든 기득권이 되겠다는 경쟁적 흐름에 합류하거나, 생계에 허덕이느라 연구를 지속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좋은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이 필요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질문해주신 활동들이 즉 ‘연구자 권리선언’이나 ‘연구자복지법’, ‘공제회법’과 같은 활동들이 학술운동의 새로운 과제가 된 것 같습니다.
질문4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연집 학술운동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연집은 영문명이 Scholars’ Commons일 뿐만 아니라 창립선언문에서도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 커먼즈’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오늘날의 학술운동에서 커먼즈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한디디 앞서 말씀드린 것과 연결되는데요, 연구자들이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 혹은 ‘불안정노동자’라고 감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집은 연구하고 싶은 사람들이 연구를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술운동’을 한다는 것이 단지 연구자의 프레카리아트성 혹은 당사자성을 주장하고 그것을 어떤 ‘안전망’을 통해 개선하고자 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식이 ‘커먼즈’라는 키워드로 표현된다고 생각하며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자본주의는 시작부터 불안정성을 생산하는 체계였습니다. 임노동이라는 아주 특수하고 역사적인 노동형식이 품고 있는 불안정성이 그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본원적 축적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다양한 전통적 커먼즈로부터 분리했습니다.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유일한 것인 노동력을 팔아 살아야하는 개인이 됩니다. 그런데 노동력의 판매는 결코 완전하게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개인(과 그의 가족)이 해결해야 하는 불안정한 것이 되었습니다. 경제성장기 동안 제1세계는 대량고용과 복지제도를 통해 불안정성을 통치했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의 대부분에 불안정성이 만연했지만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경제성장의 환상이 불안정성을 통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 비롯한 고용유연화와 금융화로 인해 불안정성이 전면화됩니다. 이제 중산층과 고학력 노동자들까지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 고용으로 인해 불안해하게 됩니다. 즉 포드주의가 고용과 복지(혹은 우리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열망)를 통해 불안정성을 통치했다면 신자유주의는 불안정성을 통해 통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안정성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모두 불안한 주체가 되고 있으며, 이것이 각자도생의 논리를 심화시킵니다. 연구자들도 이런 흐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불안정성을 생산하면서 불안정성을 통해 통치하는 사회라고 한다면, 복지를 재구축하는 것은 (필요할지언정) 궁극적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불안정성에 바탕을 둔 세계, 불안정성을 통해 사람들을 각자도생하게 만드는 세계의 논리에서 가능한 한 탈주하여 함께 새로운 삶의 형식/논리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위치와 맥락에서 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주노동자부터 고학력 연구자들까지 모두가 ‘불안정 노동자’로 불리지만 이들 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주체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연대하여 다중적 정치를 구성할 수 있을까요. 학술운동이란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공통의 운동에 어떻게 연구자의 특이성을 접속하고 연결하며 공통의 배치를 활성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합니다. 학술운동기관으로서의 연집이 커먼즈에 주목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 사회가 생산하고 유통하는 지식은 그 사회의 지배적 감각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본과 국가가 생산하고 유통하는 지식은―사회의 공통감각을 만든다는 점에서 그것이 언제나 커먼즈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하지만―사람들이 지식을 상품으로 여기고 소유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일상에서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고, 양적으로 측정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돈으로 교환될 수 없는 것을 교환하면서 이를 당연하게 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주의는 수행적으로만 유지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커먼즈는 개인들이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살아가는, 소유와 교환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삶-형식을 낯설게 만드는 담론이며 실천입니다. 소유와 교환의 논리에 앞서 공통의 협력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를 포함한 공통의 인프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생산되는 이 커먼즈는 언어화되지 않고, 그래서 보이지 않는 동시에 상품으로 포획되고 상품화됩니다. 이것을 언어화하고 보이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지식을 공통의 것으로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지식 커먼즈라는 키워드로 펼쳐질 학술운동의 중요한 측면일 것입니다. 동시에, 가난한 연구자들이 제도 밖에서 만들고 있는 대안학술공동체는 지식이 어떻게 국가와 시장이 아닌 작은 커먼즈 기반시설의 구축과 그것들의 연결을 통해 생산되는지를 보여주는 학술운동의 사례일 것입니다.
대안적 연구자 공동체
질문5 선생님께서는 영국으로 유학을 가시기 이전에 수유너머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유너머 역시 연집과 마찬가지로 대학 밖에 있는 대안적 연구자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오래 전부터 대학 밖의 연구자 공동체에서 활동해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디디 2000년에서 2005년 사이에 수유너머에서 활동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과학서나 철학서는 그다지 읽지 않았는데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가라타니 고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책을 샀는데 너무 어려운거예요. 인터넷을 검색하여 수유너머에서 세미나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가게 되었습니다. 공부가 재밌다고 처음 생각했습니다. 원래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이 학교에서의 위계적 관계로 스트레스받는 이야기를 흔하게 들었습니다. 그런 곳에는 발을 들일 생각도 없었죠. 전혀 다른 방식의 공부가 가능하며 매우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수유너머에서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당시 수유너머는 독특하게 다중심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사람들마다 능력과 기여도, 성격이 다르니 구성원 사이의 힘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면적이지는 않았고 유동적이었습니다. 중심이 여럿 있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싫은 것은 피해가며 참가할 수 있는 부분, 느슨하게 자율적인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 속에서 여러 사람들의 활동이 엮이며 서로의 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수유너머가 유명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오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유명한 선생님들의 이름을 듣고 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책을 내거나 강의를 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소 학교처럼 되었다고 느낀 것 같아요. 원남동에서 남산으로 옮기는 즈음 저는 수유너머 활동을 그만두었으니 그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수유너머는 여러 사람의 영향과 시공간의 흐름 속에서 계속 변했을 것입니다.
이후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각각 캐나다와 영국에서 했지만 함께 하는 공부 혹은 공동 연구는 여러 필드에서 계속되었고, 돌아와서도 연집과 R커, 커먼즈네트워크에 접속하면서 커먼즈를 키워드로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수유너머에서 만난 고병권 선생님과 몇몇 친구들이 운영하는 읽기의집에서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위계 없이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글쓰는 동료들을 갖는 것은 제게 있어 공부 그 자체와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커먼즈란 무엇인가
질문6 선생님께서는 최근 『커먼즈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를 넘어서 삶의 주권 탈환하기』(그린비, 2024)를 출판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커먼즈를 연구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는 커먼즈를 연구하시면서 서울과 도쿄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소위 프레카리아트가 공동공간을 만들고 이를 함께 관리·사용하는 현장을 주목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이러한 현장들을 주목하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디디 다시금 어쩌다보니, 라고 답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는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학생운동의 위기가 말해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함께 사회과학서적을 읽고 공부하는 풍토가 있었고, 빈 강의실에 모이거나 동아리방에서 먹고 자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비교도 안될 만큼 많은 자율공간이 있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말들이 떠돌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졸업 후에는 IMF가 터졌지만 불안이 사회 전체를 사로잡진 않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대항세계화운동의 흐름과 아나키즘적 운동의 확산 속에서 많은 것들이 연결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당시 진보블로그를 통해서 제가 휘말려들어간 대추리와 새만금에서의 운동들은 이전의 사회운동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었고, 소위 말하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결’ 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임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살기 위한 기획이었던 ‘빈집’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집안 사정으로 임노동을 피할 수 없었지만, 그런 것들이 정말 재밌고 좋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버리는, 이런 의미의 자율성을 행사하는 직접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들 속에서 사람들이 연결되고, 역량이 활성화되는 그런 운동이요. 그래서, 12년의 임노동 후 공부를 시작했을 때 이런 것들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흐름이 어떻게 서로 다른 도시에서 나타나고 또 약화되었는지를 더 긴 역사적 맥락에서 보고자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노동관계를 자발적으로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임노동 관계의 끄트머리에 놓인 사람들의 운동이 이러한 자율적 운동과 어떤 지점에서 공명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1960-70년대 시골에서 서울로 일을 찾아왔지만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사람들처럼 ‘임노동 관계’에 진입하지 못했거나 혹은 1990년대 이후 임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주류적 삶으로부터 탈주하고자 한 사람들이 자본주의적 도시에서 어떻게 삶을 지속했는가를 보면서, 여기에는 커먼즈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것, 즉 임노동 밖에서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나누면서 구축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활동들은 각각의 서로 다른 관행을 구축할 뿐 아니라 그러한 관행과 조응하는 독특한 공간과 심성들, ‘우리’와 ‘타자’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들을 만든다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 차이점들에 주목하면서 공통성을 아우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커먼즈였습니다.
질문7 선생님의 책이 많이 회자되었을 뿐 아니라 커먼즈에 대한 논의 자체가 한국에서 점점 더 심화·확대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향후 커먼즈 연구가 어떻게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보시는지 혹은 선생님께서는 향후 커먼즈 연구를 어떻게 진행하실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또한 선생님의 이러한 연구가 연집에서의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한디디 지금 우리의 삶의 방식이 우리 자신의 삶을 자기포식하면서 지속되며, 그러므로 지속불가능하다는 점이 여러 측면에서 이미 가시화되어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생태적 위기, 빈부격차, 부패한 정치, 사람들 사이의 상호 증오, 모든 것을 대상화하고 수단으로 삼는 풍조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이 명백한 위기, 불행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외면하고, 이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정신 승리가 만연합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생산해온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리하고 외면하는 것,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감각 말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며 지금 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신호는 점점 더 구체적이고 격렬하게 우리 삶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를 먼저 감지하는 민감한 사람들에게 전환은 정말로 긴급하고 절박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신호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커먼즈 논의가 심화·학대돼온 이유 아닐까합니다.
한편, 커먼즈가 너무 많은, 서로 모순되는 것을 편의적으로 지칭하고 있다거나 이런 의미에서 학문적 정합성을 잃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물론 이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들이 커먼즈론을 견인하려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커먼즈가 근대적 세계관과 인식론을 넘어가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삶의 현장에서는 언제나 커먼즈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운동의 현장에서는 훨씬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관계와 감각, 가능성이 상상되고 구현됩니다. 이것을 다시 근대의 언어로 해석하고, 근대적 과학이 만들어온 소위 객관적이고 엄정한 체계 내부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 형식으로 포착하기 위해 커먼즈 연구는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커먼즈를 자꾸 공동체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경향이야말로 우리가 빠져 있는 근대적 언어의 덫의 하나가 아닐까합니다. 사실 공동체라는 말은 무수한 공동체들의 다양성을 지울 뿐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를 서로 다른 선택항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개인주의는 나쁘니까 공동체를 만들자는 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미 공통적으로, 공통의 과정을 통해서 생산됩니다. 자본주의는 우리를 개인으로 감각하게 하는 공통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개인인가 공동체인가가 아니라, 어떤 공통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공동체의 일부로 느끼게 되는지를, 혹은 개인으로 감각하는 게 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또, 우리를 개인으로 생산하는 사회적 관계 내부에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를 사고하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그 자체로 선이 아니라는 것, 공동체가 닫힐 때 그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과 다를 바 없으며 너무나 쉽게 위계적으로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이 더 이상 닫힌 공동체로 환원될 수 없는 도시적 조건에서 커먼즈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게 중요한 또 한 가지 주제는 금융입니다.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생산된다고 할 때, 금융이야말로 그러한 주체화의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금융은 자원의 융통을 의미합니다. finance가 make an end라는 의미의 fin에서 기원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원이 남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이동시킴으로써 필요를 맞추는 것인데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원의 융통은 대부분 ‘이윤’을 목적으로 행해지지만 인류학자들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서로 다른 목적과 방식의 금융이 존재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세계와 인간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상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연구가 금융자본주의가 어떻게 특정한 주체들을 생산해왔는지 보여줍니다. 경제공부, 투자와 재테크는 이 시대의 윤리가 되었습니다. 즉, 금융은 우리 스스로가 거기 참여하며 이를 통해 우리의 관계와 삶, 욕망을 특정하게 빚어내는 일종의 회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윤추구가 아닌 다른 목적, 그러니까 다양한 관계와 즐거움, 공동체, 혹은 사회운동의 확장을 위해 우리의 돈과 자원을 투자할 수는 없을까요? 결국 금융은 노동을 통해 생산한 것을 사회 안에서 재분배하는, 즉 사회를 재생산하는 프로세스, 과정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노동과 금융이야말로 커머닝의 핵심적인 실천이라고 봅니다. 이윤을 위한 시장의 금융, 혹은 위계적인 국가의 재분배를 넘어선 금융을 구성할 수 있는가는 진정 중요한 문제입니다.
질문8 연집에서 현재 실천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이외에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한국학계에서 담당해야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디디 모르겠습니다. 앞서 R커의 의미나 역할 같은 것은 결국 미리 설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마주치면서 찾아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연집도 비슷하지 않을까합니다. 가능하면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그 차이들이 연결될 수 있는 경쾌한 움직임으로 지속되었으면 합니다. 일테면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역할에 대해 다들 조금씩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그 감각과 차이들이 연집이 가진 힘과 역량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의집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속적 학문탐구를 하고자 하는 젊은 연구자들에겐 한국사회는 야만적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이를 외면치 않고 대안모색을 실천적으로 하고 계시어 재야 사회적 경제학자로 자처하는 저로선 부끄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