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집 회원 인터뷰12 (정두호 운영위원)

활동소식

인터뷰 일시: 2025년 1월 16일(목) 오후 3:00 ~ 4:00

장소: 줌 온라인

인터뷰이: 정두호 (연구자의집 연구안전망팀, 동국대 철학과 강사)

진행: 박서현 (연구자의집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연구안전망팀 및 R커먼즈합정 활동

 

진행자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연집)은 “대학 안과 바깥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학술운동을 통해 실천적 아카데미즘을 복원[하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커먼즈’를 만[들며] ‘연구안전망’ 구축을 위한 연구자들의 상호부조 방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월 26일 창립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연집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두호 저는 연집 운영위원이기도 하고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대학원생노조)의 지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연집과의 인연은 대학원생노조로부터 시작합니다. 민교협, 교수노조 등과 회의를 할 때 연집의 박배균 운영위원장님을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연집을 소개해주셨고 ‘연구자들의 재잘재잘’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대학원생노조의 서울 서남권 거점을 확보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연세대학교나 이화여자대학교 등의 조합원을 규합하는 장소가 필요했던 것인데요, 그러다가 연집의 주요 활동이 지식공유 운동과 커먼즈라는 것을 알게 됐고 저도 거기에 동의하면서 적극적으로 연집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연집은 운영위원회 아래 연구자의 권리 및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연구안전망팀’, 공공성을 갖는 학술지식을 커먼즈(commons)로 이해하면서 지식커먼즈를 구축하기 위한 ‘지식커먼즈팀’, 외부 기관과의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대외협력팀’, 그리고 각 팀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사무국’을 두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이중 연구안전망팀에서 활동하시면서 연구자 공제회법 초안 마련 등을 포함한 연구안전망 구축을 위한 활동들에 참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특히 연구안전망팀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시고 이러한 활동들을 함께 추진해나가시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는 연집의 R커먼즈합정(R커)이라는 공간을 공동운영하는 반상회에서도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반상회에서 활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정두호 연관안전망팀 활동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교수·연구자들이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모든 교수·연구자들은 대학원생의 단계를 거치는 일종의 연구자 생애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 생애주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원생은 현재 교수의 정신적·육체적 폭력, 대학생도 교수도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법과 복지의 사각지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조교 활동, 학계 내 그림자 노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학회 간사 노동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연구만 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위의 나열한 환경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그래서 연구안전망을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안전망은 말 그대로 최소를 보장해 주는 시스템인데요, 최소가 정립되어야 그 이후에 더 위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안전망이 연구자 생애주기별로 구축되어야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R커 반상회는 R커라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 가는 구성원 중 특히 R커 운영에 중점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저는 공유공간 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계 연구자들은 카페나 도서관 등을 전전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갈 곳 없는 연구자들한테 공간을 제공하는 운동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상회 활동을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진행자 선생님께서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발주하고 연집의 김민환 선생님이 연구책임자가 되어 수행한 「대학 밖 학술단체에 대한 현황 조사와 불안정 연구자를 위한 지원 및 연구안전망 구축 방안 연구」에 자문으로 참여하시면서 연구자 공제회법 초안을 마련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연구안전망이 연구자 생애주기별로 구축될 필요가 있다는 선생님의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두호 연구자 생애주기로 과거에는 대학원생에서 강사와 연구원 그다음 정년 보장 교수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모델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구팀은 불안정 연구자의 연구안전망 구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 공제회나 연구자 복지법이 연구자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형 복지나 맞춤형 상품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대학원생의 경우 박사논문 작성 시기에 생활비를 대출해 준다거나 강사나 연구자에게는 연구 학기를 보장해 주거나 논문 게재료를 지원하는 식이 될 것인데요, 이는 시기마다 연구자들의 필요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고민하며 연구자 공제회를 생각하면서 건설노동자 공제회법을 참조하여 연구자 공제회법 초안을 마련했습니다. 건설노동자의 초단기 계약·근로와 강사의 노동, 연구자의 연구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구자 공제회도 출범하고 향후 더 보완하여 공제회법도 입법하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입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연구자들의 공유공간이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신촌문화정치연대 등의 공간들이 있지요. 선생님께서는 R커 반상회 이외의 다른 곳에서도 활동하시나요?

 

정두호 활동을 한 것이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데요 수유/너머에서 세미나를 몇 개 들었습니다.

 

진행자 다른 곳이 아닌 R커의 반상회에서 활동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두호 일단 반상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이 좋았습니다. 그다음 다른 공간과의 차별성으로, 제가 다른 공간들을 잘 안 가봤기 때문에 정확히 답변드릴 수는 없지만, 커먼즈 운동을 기치로 하는 공간은 R커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커먼즈네트워크에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속해 있지만 R커에서 커먼즈 운동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점이 R커의 차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학술운동과 커먼즈

 

진행자 선생님은 젊은 연구자이시지만 (웃음) 연구자의 권리 및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활동이나 지식커먼즈를 구축하기 위한 활동이 예컨대 1980년대 후반 한국 학술운동과는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연집 학술운동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또한 연집 학술운동과 관련하여 커먼즈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정두호 제가 90년대생이라서 1980년대 후반의 학술운동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현재 연집 운동에서 분명한 점은 기존의 도제적 방식이나 텍스트에 주석을 다는 방식으로 지식이 유통되고 전수되던 형식을 넘어 지식을 분명하게 공공재로 규정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지식은 인류 모두의 것이라는 공통 감각을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인데요. 이러한 운동이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특정 계층을 표현하는 담론의 해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픈엑세스 운동은 누구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연집 같은 일종의 학교 밖 학술단체는 대중에게 해당 지식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연집은 공공성을 주요 가치로 하여 지식을 공적 가치로 변환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는 공유공간 운동에도 비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공계는 랩실이라는 일정하게 출근하는 연구 공간이 있습니다만, 인문사회계는 집이나 도서관, 카페 등을 전전합니다. 일정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공간을 공유하는 운동은 갈 곳 없는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의 사회 참여와 대학원생노조 활동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2024년 말 예상치 못한 계엄과 그 이후의 탄핵 그리고 이어지는 정세 하에서 연집 역시 민교협, 교수노조, 비정규직교수노조, 대학원생노조 등과 ‘윤정권 내란세력 완전청산, 제7공화국 수립 전국교수연구자 연대’를 출범시키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정국의 변화 속에서 많은 교수·연구자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는데요, 이러한 활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이러한 시국에서 연집을 포함하여 교수·연구자에게 필요한 것 혹은 요청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두호 저는 학문을 연구하는 교수·연구자라면 마땅히 현실을 딛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현실 참여적이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연구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번 윤석열 내란 사태와 관련하여 작금은 단순한 정권교체 요구가 아닌, 사회대개혁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7공화국이라는 명칭을 다수의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 교수·연구자들은 대학의 공공성 확보와 학술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신자유주의 체제 하의 현재 대학 구조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의 재생산과 발전은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교수·연구자 집단은 지속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 교수·연구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합과 투쟁입니다. 기존의 파편화된 학계에서 단합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점점 많은 교수·연구자들이 본인의 연구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사안에 대응할 수 있는 단체로의 소속이나 단체를 출범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내란 사태를 통해 대학원생 노조가 크게 성장했는데요. 저는 대학원생노조의 이번 조직화가 대학원생들의 졸업 후 연구자 운동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마지막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연집 이외에도 대학원생 노조의 지부장으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대학원생노조의 성장이 향후 연구자 운동의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두호 많은 대학원생들이 노조의 필요성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생노조의 가입동기는 첫째 민주노총에 소속되고 싶다는 것, 둘째 대학원생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 셋째 대학원생들의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공통 감각을 갖는 대학원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이들이 졸업하여 학계에 진출할 경우 기존의 파편화되어 있는 동시에 소극적으로 노동조합에 참여하거나 소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발언해왔던 보수적 학계가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투쟁하는 대학원생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투쟁하는 연구자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번 조직화가 좀더 크게, 좀더 잘 돼서 학계의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대학원생 노조의 두 번째 가입동기가 대학원생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지요.

 

정두호 네, 공동체의 필요와는 다른,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 개인이 할 수 있는 것, 대학원생 집단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대학원생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이 구분된다는 점을 느끼신 게 아닌가합니다.

 

진행자 민주노총에 소속되고 싶다는 것은 연구가 갖는 노동으로서의 성격, 연구자가 갖는 노동자로서의 성격에 대한 인식의 표현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는 연구자들이 모여서 만드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투쟁에서 연대의 필요에 의해 만든 연대체는 다르고요, 먼저 선생님께 연구가 노동임을, 연구자가 노동자임을 인식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중요한지 문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두호 역으로 저는 연구자는 왜 노동자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이해될까 고민했습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홍보도 하다 보니 연구자가 문화자본을 갖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자가 노동자라면 일종의 따옴표친 “노동자”라는 것인데요, 즉 연구는 몸을 쓰는 노동과는 다르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다음 한국사회의 문화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가 일상인 사회에서 이를 노동이라고 인식하기 좀 힘든 것 같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이 공부이고 연구자들이 9시-6시 출퇴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공부라는 표현을 쓸 경우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교육 문화적 맥락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지 않을까합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투쟁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할텐데요, 선생님께서는 연대 투쟁의 핵심적 과제를 무엇으로 보시나요?

 

정두호 연대 투쟁의 핵심적 과제는 이러한 투쟁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합니다. 아직도 자기가 열심히 하면 교수가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신화에 빠져 있는 대학원생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노조는 쓸데 없는 시간 뺏기 활동입니다. 이분들을 설득할 때에는 이 체제의 지속불가능성을 강조하게 되는데요, 이처럼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결국 대학원생노조 활동을 통해 연구자 바깥의 누군가에게 발언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 발언이 연구자들 자신에게로 향하는 측면도 있으며 이것이 중요하다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두호 네. 연구자 내부에 목소리를 닿게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목소리가 잘 다다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는 자기의 언어가 정립돼 있기 때문인데요, 무슨 전공이든 연구를 통해 자기의 언어를 정립하여 세계관을 구축한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만의 언어 체계가 있고 세계관이 있어서 어떤 공통의 세계를 만드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연대와 공동체의 필요를 구분했는데요, 공동체를 원하시는 분들은 대화할 수 있는 장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식으로 대학원생 단계부터 공통의 언어 체계를 구축하고 공통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 공동체에 더 자주 모이고 더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선생님께서 대학원생노조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와 함께 대학원생노조 활동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두호 먼저, 저희 대학원생노조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으로 2017년 12월 출범했습니다. 저는 2019년에 동국대학교 조교 단체 해고 사태를 통해 가입하게 되었는데요, 어떻게 하다 보니 지부장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저희의 목표는 매우 분명합니다.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자라는 것인데요. 교수의 갑질,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조교 업무, 학계 내 그림자 노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학회 간사 활동 등, 우리 대학원생은 연구와 더불어 많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그 역할들이 오히려 연구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억압적인 구조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억압적 구조, 사각지대에 놓인 대학원생의 인권 신장과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단체가 대학원생노조입니다. 저는 이번 2월을 끝으로 지부장 임기가 끝나게 되는데요. 앞으로도 대학원생노조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말이 인터뷰에 꼭 나가면 좋겠습니다. (웃음)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유가철학

 

진행자 네 볼드체로 강조하면 좋겠습니다. (웃음) 선생님의 연구적 관심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선생님께서는 한국유가철학을 전공하시고 정도전의 신멸론(神滅論) 등을 연구하셨을 뿐 아니라 유가철학과 기술철학, 커먼즈, 사회적 돌봄 등의 접목을 모색하는 식으로 유가철학의 심화와 확장을 도모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적 관심 및 선생님께서 이러한 관심을 가지시게 된 이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두호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학문이 현실과 밀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철학은 이 현실을 긍정하는 대표적인 동양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 관심과 목표는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가철학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계가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비극에 얼마나 목소리를 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존의 이론을 좀더 발전시키거나 어떤 철학자의 본의(本意)가 무엇인지 연구하는 분야도 굉장히 중요합니다만, 그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다양한 분야와의 접목, 사회적 현상과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유가철학의 변화·발전 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저는 서양철학을 전공을 했는데요, 필요하고도 중요한 문제의식이지 않은가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유가철학의 전통이 있지요. 아마도 유가철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중요한, 경전적 지위를 갖는 문헌들이 있을 것이고요, 두텁게 쌓여 있는 전통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유가철학을 하는 것은 연구자에게 큰 과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러한 과제가 그저 잘 해석하면 적용도 할 수 있고 목소리도 낼 수 있다는 식으로 풀어내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가철학을 연구하는 선생님의 작업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을 듯한데요, 선생님께서는 무엇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두호 말씀하셨듯이 저희는 경전이 있는데요, 자칫 잘못하면 우리에게 원래 다 있었어, 우리 철학이 다 말하고 있었어, 공자는 그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했어와 같은 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분야, 다른 학문과의 접목·융합이지 않을까합니다. 유가철학이 모든 문제의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유가철학은 굉장히 인간중심주의적이기 때문에 현대생태학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해야 될 필요가 있는데요, 생태유가철학을 하시는 분들은 인간중심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 하에 신유물론과의 접목을 꾀하거나 인간중심주의를 재해석하는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경전적 지위를 갖는 문헌을 활용하면서도 그것에 부족한 부분을 다른 학문과의 접점을 모색하거나 해석자의 주관을 좀더 개입시키는 방식으로 유가철학을 변용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학계에서 얼마나 통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동료평가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철학과 연집 활동의 관계

 

진행자 어렵지만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동시에 가시밭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뚜벅뚜벅 꿋꿋이 끝까지 걸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웃음) 선생님의 연구적 관심과 연집 활동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정두호 유가철학에서 제가 좋아하는 개념이 친친(親親) 만물일체(萬物一體)인데요. 친친은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만물일체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유가철학은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강조하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존재를 사랑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가 각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연집이라는 곳에 모였지만 어떤 공동의, 공통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감각을 다듬고 함께 추구하는 과정이 너무 재밌습니다. 제 연구적 관심이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가철학에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연집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의식 또한 저의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철학을 전공하지만 약간 현장 연구하시는 분들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듣는 소중한 자리가 연집 활동인 것 같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연집에서 현재 실천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이외에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한국학계에서 담당해야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두호 연집을 저는 따뜻한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환대해 주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연집에서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연집의 지속가능성을 좀더 고민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속가능해야 운동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한국학계에서 담당해야 되는 역할에 대해서 저는 오픈엑세스 운동, 즉 지식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운동이 좀더 강조되고 그다음 그것을 생산하는 연구자들의 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연집 활동의 방향성이 맞다고 생각하고 연구안전망팀의 활동이 연집의 초점 되는 것이 연집이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연집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할텐데요 지속가능성을 여러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R커의 지속가능성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고, 연집을 함께 하는 구성원의 유지와 확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신 연집의 지속가능성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정두호 저는 연집의 인적 재생산에 우리가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좀 지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저도 대학원생노조 지부장을 2년 동안 하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꼈는데요, 연집 운영위원 선생님들도 그러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연구자들과 함께 연집 활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집도 어떤 홍보 전략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요, 새로운 구성원의 유입이 합니다.

 

진행자 동의합니다. (웃음)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향후 학문적 과제를 포함하여 학술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두호 저는 철학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학계가 사회적 참사나 사회적 비극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으며 사회적 참사, 비극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지만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현실 참여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구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도 맞지만 직접 몸으로 활동하고 투쟁하며 사람들과 만나 연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필요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 학문적 과제로, 제 논문을 쓰는 것도 있으나, 연구자를 조직하는 것 그리고 연구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진행자 연집 활동을 포함하여 대학원생노조 활동을 하시면서 몸으로 부딪히고 고민하셔서 그러한 경험이 없다면 어쩌면 피상적으로 얘기될 수 있을 문제들을 생생하게 느끼고 생각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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