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집 회원 인터뷰15 (심한별 운영위원)

활동소식

인터뷰 일시: 2025년 10월 20일(월) 오후 7:00 ~ 8:00

장소: 줌 온라인

인터뷰이: 심한별 (연구자의집 운영위원,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선임연구원)

진행: 박서현 (연구자의집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구자의집 2기 운영위원회 및 R커먼즈합정 활동

 

진행자: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연집)은 “실천적 아카데미즘의 정신으로 […] 신자유주의 지식생산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지식커먼즈를 구축하고, 연구자들의 복지와 권리 증진을 이루기 위해 지난 2020년 10월 창립했습니다.” 먼저, 선생님께서는 연집이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마련했던 R커먼즈 합정(R커)를 공동 운영하는 반상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R커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현재 연집은 서교동을 떠나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유하는 새로운 공간을 마포구 도화동에 마련하고 2기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게 되었는데요, 선생님께서 2기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기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심한별 저는 R커에 대해 연집의 운영위원장이셨던 박배균 선생님께 처음 들었습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R커에 대해서 경의선공유지와는 조금 다른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경의선공유지로부터 이어지는 R커를 저는 연구자 공동체가 일반 시민을 포함한 다른 세계와 접속하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습니다.

제게 R커는 어떤 당위나 연구자들의 공유지를 만든다는 추상적 의미보다 대학 밖에서 무언가를 하는 행동으로 비쳐졌습니다. 학제나 위계에 영향 받지 않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의 만남의 장이 될 것 같았고, 이를 지향하지 않을까라고 상상했습니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었고 딱히 무슨 코드나 규정, 설계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행해가며 만들어가는 장, 연구자들이 연구실 경계 너머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2기 운영위원회 참여에 대해 질문하셨는데요, 제가 가늠하기로는 연집에 자원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이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간을 공유하게 되었는데 제가 연구소 분들과 오랫동안 잘 알고 있어 다리를 놓게 되었습니다. 연구소 쪽에서도 사무실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그렇다면 공간을 공유하자고 얘기를 나누게 되었던 것인데요. 제가 생각했을 때는 공간의 위치도 좋고 공간을 공유하면 시너지도 날 것 같아 적극적으로 같이 하자는 의견을 냈던 것이 2기 운영위원회 참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재 저는 내용적 기획보다는 시설 관리자의 느낌으로 향후 어떤 활동을 담을 공간을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고 있어요. (웃음) 시설 관리의 재미가 있습니다. 시설 관리를 하고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다 보면 공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면 좋겠다고, 일어나도록 하자고 꿈꾸게 되는데 이 과정이 재밌습니다. 어떤 의미를 먼저 부여하기보다 구체적인 것을 만들고 꾸미면서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제게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역할을 기대하면서 현재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연집은 2022년 12월 21일 개소식을 열고서 활동을 시작했던 R커를 지난 8월까지 2년 반 넘게 운영해왔는데요, 그 사이 선생님이 기획하거나 참여하셨던 행사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행사가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 R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을지도 궁금합니다. 관련해서 방금 전에 새로운 공간을 기획하면서 갖게 되는 기쁨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이에 대한 구체적 경험이나 기억을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실 경계 너머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장으로 R커라는 공간을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관련하여 R커가 선생님의 상상과 맞는 부분이 있었는지 혹은 기대와는 좀 다른 측면이 있었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심한별 그간 R커를 같이 운영하면서 제게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무엇보다도 연구자들의 재잘재잘입니다.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를 발표하고 다른 연구자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는데요, 대학에서도 연구실에서 혹은 지도교수로부터 이와 같은 식으로 의견을 듣는 일이 일어나기는 합니다. 연구자들의 재잘재잘은 이와는 조금 다른 형식을 상상해보자라는 취지에서 제가 제안했었습니다.

예전에 디자인 아이디어를 경연 형식으로 발표하는 행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꽤 명망 있던 디자인 기획자분들이 기획한 디자인 경연대회를 홍익대학교 근처에서 십 수년 전에 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페차쿠차라고 불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학제에서 연구로 인정되지 않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적 엄숙성을 따진 다음 학제에서 호출되고 소비되는 연구가 아니더라도, 형식적 완결성이 다소 덜 하더라도 연구자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다른 연구자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장으로서 페차쿠차를 본뜬 연구자들의 발표의 장을 제안했습니다.

실제로는 연집 회원들 및 네트워크되는 분들 위주로 진행을 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일종의 연구 합평회처럼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재미도 있었고 참여했던 분들이 좋은 경험이었다고 평가도 하셨는데요, 학제의 구속에서 벗어나 연구자들의 아이디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원래 의도했던 바는 연구자와 연구자가 아닌 사람들의 경계를 허물고 그다음 연구실과 연구실 외부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는데요, 거듭 진행이 된다면 어떤 프로토타입이 생기거나 또 이것이 좀더 진화하여 제가 의도했던 바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첫 회를 진행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참여하고자 했습니다. 애초에 의도한 이상적 모습은 아니었음에도 좋은 시도였다고 자평하는데요, 이것이 어딘가에서 다시 만들어진다면 좋아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구실 경계 너머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장으로서의 R커에 대해 생각해보면 공간의 물리적 속성을 생각했을 때 저는 1기 R커의 위치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공간이었고 저희에게는 다소 사치스러운 공간이었죠.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했음에도 좋은 동네의 좋은 위치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었는데요, 사실 저는 R커가 다소 누추하더라도 노출이 더 많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의선공유지처럼 텐트를 치더라도 혹은 일시적인 공간이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저게 무엇이지라고 하며 기웃거릴 수 있는 가시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리적 가시성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는 제 개인적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그런 조건에 합당하면서도 적정한 임대료를 가진 적당한 위치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2기 R커는 대중교통으로부터의 접근성이 굉장히 좋습니다. 전철역에서 5분 정도입니다. 그리고 가시성이 큰 공간은 아니지만 쉽게 들를 수 있는 위치여서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건에 따라서는 공간 밖으로 나가 연구자들이 활동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면에서 어떤 완벽히 갖춰진 공간이라기보다는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요, 새로 이사한 곳에는 옥상이 있습니다. 여기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가설 텐트를 만들었고 이 공간을 좀더 꾸며 재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구상 중에 있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도 R커를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간을 공유하는 식으로, 연집 입장에서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식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렇게 구현이 됐습니다. 그런데, 연집이 공간이 있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연집 운동의 상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을 듯합니다. 연집이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 공간에서 연집이 열어갈 수 있는 활동들은 무엇이어야할지에 대한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싶습니다.

 

심한별 선생님의 질문은 연집의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한가 그리고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 공간은 어떤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가라고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아닐 수 있겠지만 저는 최소한 공간이 갖는 속성이 있고 공간이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토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간이 없는 상태를 상상해보면, 혹은 그저 사무공간이나 사단법인의 행정적 주소지 목적의 공간만 있다고 한다면, 인터넷 커뮤니티나 개별 활동들의 연결체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공간은 한데 모일 수 있는 동시성을 가능하게 하는데요, 한 장소에 여러 사람이 모여 같은 시간대에 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는 단순히 수다를 떠는 게 아니라 유목적적으로 향후 무언가를 해보자는 논의가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작더라도 몇 사람이 모여 꾸준히 아이디어를 축적할 수 있는 공간에는 나름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옥탑에 대해 말씀드렸는데요, 사무공간이나 회의실로 딱히 규정되지 않는 공간, 어슬렁거려도 되는 공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 잘 이용된다면 어떤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지 않을까라고, 적어도 친목이라도 도모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옥탑이 잘 꾸며지면 사진으로 그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웃음)

 

오늘날의 학술운동과 커먼즈

 

진행자 감사합니다. (웃음) R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활동 이외에도 연집에서는 예컨대 연구자 권리선언 추진, 연구자복지법토론회 진행, 연구자 공제회법 초안 마련 등을 포함한 연구안전망 구축 방안 연구 등의 활동들을 진행해왔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은 연구자의 권리 및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이러한 활동들이 예컨대 1980년대 후반 한국 학술운동과는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어떤 측면을 보여주는 것일지 궁금합니다. 관련하여 만약 이전의 학술운동과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심한별 제게 질문지를 주셨을 때 참 고민스러웠던 질문이었는데요, 찾아보기도 했지만 제가 한국에서의 학술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저 제 개인적 소회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사회와 연구자의 관계가 학술운동이 주로 주목하는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예컨대 연구자 복지법이 주목하는 주체는 연구자입니다. 타칭 연구자이든 자칭 연구자이든 연구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주목하는 것이 연구자 복지법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회와 연구자의 관계가 학술운동의 주목 지점이라고 한다면 이전의 학술운동의 주체는 연구자 복지법에서 주목하는 연구자와는 다소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의 학술운동 주체는 사회적으로 의미를 획득한, 추상적 차원의 지식인이지 않을까요. 이와 달리 연구자 복지법에서 얘기되고 논의되는 주체는 대체로 지식 노동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식인과 지식 노동자는 사회에서 사용되는 관행적 뉘앙스가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서는 겹쳐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컨대 해고되지 않는 것과 같은 제도적 안전장치로 인하여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지식인들과 달리 연구자 복지법은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지식 노동자들이 안정과 인정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연구자 복지법은 지식 노동자들 스스로 그들의 사회적 의미를 확보하고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제도적으로 보장받기 위한 제도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는 제가 학술운동에 대해 매우 제한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연집 학술운동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연집은 영문명이 Scholars’ Commons일 뿐만 아니라 창립선언문에서도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 커먼즈’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오늘날의 학술운동에서 커먼즈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심한별 이것도 제게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었는데요, 다양한 형태, 다양한 형식의 지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필요로 하는 지식을 활용하는, 지식 생산과 공유, 사용의 장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학자와 비학자가 구분되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도처에서 지식이 생산되며, 생산된 지식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지식 생산의 과정 또는 지식 생산의 구조가 이미 많이 변화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연구자 또는 지식 생산자의 역할이 혼돈에 빠질 수 있으며, 이에 지식 생산자가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역할과 필요는 언제나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필요가 있는 곳이 지식 생산자의 위치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학이 이런 위치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비판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대학이 새로운 지식 생산의 장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이자 반성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대학이 그런 곳이어야 한다 아니면 다른 무엇이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  아마도 긴 변화 과정 속에서 새롭게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곳이 연구자들이 활동하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그곳이 반드시 대학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집이 사회적으로 연구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직능 단체이기보다,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지식 생산의 공간, 아마도 새로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장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사회적으로도 그 존재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식 커먼즈를 만드는 작업은 연구자들이 새롭게 자기의 역할을 설정하며 지식 생산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대학이나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어 여기에서 새로운 지식이 생산된다고 관념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이는 순식간에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지식이 생산되는 곳이 연구자들이 모여 있는 다른 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차원에서도 연구자들의 지식 커먼즈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드립니다. 향후 연집은 2025년 8월 27일 창립한 연구자공제회에 최대 2년간 가능한 지원을 지속할 것을 결의했습니다. 연구자공제회에 대한 간접적 지원 이외에도 혹시 연집에서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나아가 연집이 한국학계에서 담당해야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관련하여 연집이 연구자들이 모인 새로운 지식 생산의 장이 되는 것 자체가 한 과제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다고 했을 때 어떤 지식을 생산해야 되는가에 대한 선생님의 고민도 함께 공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심한별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웃음) 어떤 지식을 생산해야 되는가라고 물어보셔서 원래 제게 물어보신 질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더 어려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연집의 활동 여건을 생각했을 때 회의적인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꿈꾸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리면, 저는 연집이 추진해야 하는 새로운 활동은 장기적으로 연집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개별 연구자들이 만든 상호 부조 단체가 된다면 이는 방어적이거나 소극적이고 기본적인 의미라고 생각하고요,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면 저는 대학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혹은 연구자를 고용하고 있는 대학과 관련하여 생각한다면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산업별노조처럼 정치력이 있는 주체로 스스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헐리우드의 작가 노동조합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처럼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집을 구축을 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집을 구축하는 것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연구자들이 상호 부조하며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것만이 아니라 지식 생산의 장을 어떻게 재구조할 것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지면서 자유롭게 얘기하고 무언가를 함께 만들 수 있는 그런 연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웃음)

 

도시, 주거, 건축에 대한 연구

 

진행자 그런 연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웃음) 선생님께서는 도시 개발과 계획 그리고 건축을 전공하시고 도시, 주거, 건축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연구적 관심 및 선생님께서 이러한 관심을 가지시게 된 이유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울러 선생님의 연구적 관심과 연집 활동의 관계가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심한별 하나하나 다 어려운 질문인데요 실은 저는 건축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서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건축이 여전히 재밌습니다. 구체적 공간을 구축하는 일이 재밌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깨닫게 됩니다. 여담입니다만 아마도 저는 다시 건축 설계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웃음)

저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데요, 이런 면에서 건축은 제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구체적이면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활용도 되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하게 만듭니다. 공간을 단순히 소비하거나 어떤 특정 의미로 치환하기보다 물질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시를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인데요, 도시를 저는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공간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어쩌면 지식경제 시대에 맞는 정의이기도 합니다. 도시에서는 정보가 만들어지고 데이터가 만들어지며 그걸 통해 무언가가 생산됩니다. 분배정의 못지 않게, 저는 생산을 대안적으로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은 곧 노동인데요, 그러니 노동을 어떻게 다시 조직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생산과 분배를 나눠서 보기보다는 본디 생산과 분배가 하나로 겹쳐져 있다는 점에서 생산을 재조직하는 것이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관심 대상이 특정되기도 하며 동시에 점점 확장되기도 하는데요. 노동이 이루어지는 모든 현장이 제 관심사가 됐습니다. 공장일 수도 있고 작은 작업장일 수도 있고 배달 음식을 만드는 주방일 수도 있는데, 노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그에 맞는 모양으로 조직됩니다. 이것 자체가 저의 관심사입니다. 이를테면 노동이 조직되는 방식에 따라 공간도 조직되고 또 공간을 조직하면 그에 맞춰 다시 노동이 조직되는 식으로 노동과 공간은 상호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런 맥락으로 공단이나 공장 등 생산 관련 공간들을 미시적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청계천 변 도심 제조업 작업장 연구도 그런 맥락입니다.

주거 지역도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 노동은 주거 공간에서도 일어나고 상업 공간에서도 일어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노동이 무엇인지를, 노동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다시 살펴보려합니다. 이것이 연구자로서 저의 고민이라고 한다면, 연집과 제 고민의 직접적 연관성을 아직은 구체적으로 찾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연집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사회 현장의 구체적 모습을 상상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 향후 학문적 과제를 포함하여 학술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심한별 저는 주중에는 서울에서 주말에는 강릉에서 머물면서 지내는데요, 이러한 삶이 한동안은 미디어에서 여유로운 사람들의 어떤 낭만적인, 세컨 하우스가 있는 삶처럼 포장되었는데, 제게도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크지는 않습니다. (웃음) 제 경우는 한 5년 정도 지내다 보니 지방의 구체적 현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세계 안에도 실은 많은 다른 세계가 병렬적으로 존재하듯이 지역이 처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향후 지역을 좀더 미시적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경험하는 매일의 일상에서 동네를 기록하고 지역의 공간들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그것들에 어떠한 틈새가 벌어져 있는지 등을 직접 관찰하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진행자: 어느새 인터뷰를 시작한 지 한 시간 가까이 되었는데요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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