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일시: 2022년 1월 17일(월) 오전 10:00 ~ 11:00
장소: 줌 온라인
인터뷰이: 박배균 (연구자의 집 운영위원장,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진행: 박서현 (연구자의 집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연구자의 집 창립 역사
진행자 안녕하세요 박배균 선생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이하 연집) 뉴스레터 2호 게재를 위한 회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연집은 실천적 아카데미즘의 정신으로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지식커먼즈를 구축하고 연구자들의 복지와 권리 증진을 위해 2019년 1월 26일 창립했습니다. 창립 이전에도 연집은 경의선공유지운동에 결합하는 등 여러 활동을 실천해왔는데요 먼저 연집의 역사와 관련하여 문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이하 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이하 학단협) 등의 교수·연구자 단체가 모여 2014년 2월 ‘진보 학술의 집’ 추진계획안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이 이후 2017년 10월 민교협 내부 논의를 거쳐 연집의 창립으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위 계획안을 제안하셨지요. 제안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연집 연혁을 작성하면서 옛 자료들을 훑어보며 시간이 꽤 흘렀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4년 논의에서 시작하여 2017년 10월부터 연집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2017년 말부터 따져도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5년을 향해 가고 있는데요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좌충우돌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고민이 되었고 여러 복잡한 상황이 있는 데 과연 얼마나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리할 계기가 되어서 다행인 측면도 있고요 이런 계기를 마련해주어 고마운 생각도 있습니다.
2014년 논의와 지금의 연집 간에는 다소 격차가 있고 2014년 논의와 2017년 논의가 논리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2014년 논의는 다소 우발적이고 돌출적 사건의 성격이 있다면, 2017년 논의는 좀 더 의지를 갖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해보려는 성격이 강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2017년 6월 제가 다소 갑작스럽게 민교협 상임공동의장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 민교협이 상임공동의장을 맡을 분을 찾지 못하는 위기 상황에 있었는데, 어떻게든 사람을 찾는 와중에 제가 그 일을 덜컥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전에 서울대 민교협 활동을 주로 했지 중앙 민교협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저는 당시 중앙 민교협의 활동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큰 소속감도 가지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게 상임공동의장을 제안할 정도로 중앙민교협이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민교협이 그러한 어려움에 처한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직의 재생산이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원이 들어와서 확대가 이루어지고 선배 교수들의 역할을 이어받는 후배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다 보니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교협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고 또 일부한테 업무가 과도하게 몰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민교협 상임공동의장을 맡았을 당시 민교협 활동은 대부분 외부에서 일어나는 각종 노동조합 운동이나 갈등 현장에서 기자회견과 지지 발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활동이며 특히 87년 세대 사회운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민교협도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의 와중에서 탄생했고, 그러다 보니 지식인들이 노동자, 민중의 투쟁 현장에서 투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거나 선언문을 발표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투쟁하고 있는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등의 입장에서는 교수, 지식인들이 모인 민교협에서 나오는 지지 발언이나 성명이 투쟁의 대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활동을 민교협에 계속해서 요구하는 상황도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교수·연구자 사회 내부에서 이런 일을 계속 하겠다고 자임하는 연구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결국 시대가 변한 것이고 교수·연구자들이 외부의 사회운동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더 이상 맡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제가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사건에 대해 성명서를 쓰는 일이 매우 힘들게 느껴졌고,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적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소위 87년 체제의 일부를 담당했던 진보적 교수, 학술운동이 많이 침체된 상황이었고, 교수/학술운동의 방향을 전환하지 않으면 이런 위기적 상황이 계속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2014년의 진보 학술의 집 제안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민교협 보다는 학단협이 처한 어려움이 더 이슈가 되었었습니다. 학단협에 소속돼 있던 비판적 학회들이 제도화되면서 애초의 야성과 비판적 정신을 많이 상실한 상황에서 학단협 활동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진보 학술의 집 제안의 직접적 계기가 된 사건은 학단협 사무실 임대 문제였습니다. 당시 학단협은 안국역 인근에 위치해 있던 역사문제연구소 건물의 일부를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의 재건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그 기회를 통해 역사문제연구소의 공간만이 아닌 비판적·진보적인 다양한 교수/학술운동 조직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2014년 진보 학술의 집 제안의 배경이었습니다.
진행자 2017년 10월 민교협 내부에서 연집 논의가 시작됐고, 같은 해 12월 민교협과 교수노조의 합동 송년회에서 연집 구상안이 발표됐습니다. 추진계획안이 처음 제안된 2014년 2월부터 구상안이 마련되는 2017년 12월까지 대략 4년의 시간이 흘렀는데요, 혹시 2017년 말에 연집 구상을 실질적으로 점화시킨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또 추진계획안과 구상안 사이에 변화된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돌이켜보면 2014년 진보 학술의 집 제안에는 지금의 연집과 연결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논의가 더 진전되지는 못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의 건물이었고 그래서 당시 역사문제연구소의 의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문제연구소가 다른 조직과 공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큰 의지가 없었던 듯합니다. 이후 역사문제연구소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2014년의 제안은 하나의 에피소드 정도로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그렇게 뿌려졌던 씨앗이 3년이 지난 2017년에 다시 부활하여 싹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2017년에는 2014년의 발상과 논의를 되살려, 비판적·진보적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침체된 교수/학술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자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에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서 여러 곳을 방문했고, 여러 분들을 만나 도움과 조언을 얻었습니다. 특히, 영등포의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마포구 망원동의 어쩌다가게를 방문하여 얻은 조언과 도움이 2017년 논의를 진행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2017년 논의의 주안점은 공간을 직접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4~50억 정도의 자금을 마련하여 우리가 건물을 짓자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퇴임교수님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연구공간을 만들어 임대를 하고 목돈을 마련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건물에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도서관,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공간, 강의실, 세미나룸 등을 추가하여 운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고민이 2017년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주로 했던 것입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구상은 그동안 침체됐던 교수 학술운동을 부활시킬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기 위한 모색의 일환이었습니다. 다양한 지향과 관점을 가진 비판적 연구자들의 개성,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함께 할 수 있는 연대의 틀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했고 이를 위해서는 공간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더라도 공간은 같이 쓸 수 있습니다. 공간을 같이 사용하면 구체적 지향과 관점이 다르더라도 연대가 가능할 수 있습니다. 즉 ‘따로 또 같이’의 구체적 전략으로 공간공유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좀더 구체적인 기획안을 만들었습니다. 기획안을 만들 때는 망원동 어쩌다가게의 건축가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기획안을 바탕으로 2017년 12월의 민교협 송년회에서 추진 계획을 발표하여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민교협 내부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고 썩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실은 지금도 있습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회운동 특히 노동운동을 도와주는 지식인들의 조직으로 민교협을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있고 그때는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과연 이게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당연히 가졌을 듯합니다. 이런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추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2017년 말에 시작하여 2018년 초반까지 준비를 하면서 두세 달 정도 고민을 해보니 우리가 스스로 자금을 만들어 건물을 짓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자금을 모아서 건축을 추진하기에는 우리의 기본 지식·경험·역량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감당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 사이 여러 경험이 좀 쌓여서 조금 다를 것 같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경의선공유지운동과의 결합
진행자 2017년 말 구상안이 발표된 이후 연집은 경의선공유지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2018년 5월 경의선공유지추진위를 발족하고 같은 해 7월에는 경의선공유지에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계획도 수립했는데요, 연집에서 경의선공유지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경의선공유지에 컨테이너를 설치하는 계획을 수립했던 이유도 궁금합니다.
박배균 건물을 짓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의선공유지운동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방문하게 된 공덕역 1번 출구 옆의 경의선공유지는 꽤나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컨테이너, 텐트 등 가건물을 아기자기하게 설치하고 벼룩시장, 예술/문화행사, 공연, 어린이 놀이터 등을 여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자신들을 서울의 26번째 자치구라 부르는 도발적인 에너지가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우리들이 경의선공유지에 모인 다른 분들만큼 절박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2017년 10월부터 고민했던 것과 같은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 자본주의 도시의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에 고민하던 차에 경의선공유지라는 위치 좋은 곳에 사람들이 텐트를 치고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모여 있는 모습이 저에게 너무 해방적이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경의선공유지 운동이 지향하는 커먼즈의 가치가 연구자의 집이 추구하는 지식과 공간의 공유라는 가치와 잘 부합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연구자의 집 건물을 당장 짓는 것은 어렵지만, 경의선공유지 운동과 연대하면서 그 공간에서 연구자의 집이 하려고 했던 지식공유와 연구자 연대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연구자의 집이 지향하는 바를 좀 더 널리 알리고 확산하면 나중에 제대로 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 이미 경의선공유지에서 오래 활동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018년부터 최소한 2년 혹은 3-4년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 연집의 취지를 좀더 알리고 지식공유라는 가치도 좀더 확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경의선공유지 운동에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지리학자로서 자본주의 도시의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도 이러한 결정의 한 배경이 되었구요.
그래서 2018년 6월 민교협에서 연구자의집에 대한 새로운 기획안을 발표하면서, 4-50억의 자금을 모아 건물을 짓는 것 대신에 경의선공유지에 임시로 컨테이너 건물을 짓고 지식공유 활동을 하면서 경의선공유지 운동에 결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경의선공유지에서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나갔습니다. 그 당시 경의선공유지에서 가장 큰 공간이 기린캐슬이라는 높은 천막이었는데, 그 안에서 강연, 토론회, 세미나 등 다양한 지식공유 활동과 연구자의집 관련 회의를 가졌는데, 그 활동들이 현재 연구자의집이 지향하는 목표와 비전을 설정하는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특히, 경의선공유지 운동과 연대하면서 실천적 아카데미즘에 대해 고민하고, 지식 공유를 보다 커먼즈적인 관점에서 깊이 천착하게 되었습니다. 지식공유가 단순히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연구자나 시민들과 공유하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연구자 내부의 차별을 해소하고 한국의 학술지식생태계를 변화시키며 대학을 개혁하는 것과 깊이 연관된 문제라는 인식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연구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활동을 하는데 바탕이 되는 ‘연구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매우 깊이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연구자 노동시장의 극심한 양극화와 내부 차별로 인해 굉장히 많은 연구자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힘들게 연구활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안전망이 너무 취약하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연집에서 추후 이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고쳐나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결국 경의선공유지운동과 연대하며 자본주의 도시 공간에서의 배제와 억압, 그리고 그에 저항하는 커먼즈 운동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그러한 자리를 같이 했던 많은 연구자들과 같이 토론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현재 연구자의집이 지향하는 가치들과 비전들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현재 연집이 지향하는 1) 실천적 아카데미즘, 2) 지식커먼즈를 통한 학술생태계의 변화와 대학의 개혁, 3) 연구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자의 복지와 권리의 증진 등이 구체화됐고, 이를 위해 연구자의집이 지식공유의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자의 ‘집’의 의미: 새로운 연대 방법으로서의 공간공유
진행자 이번에는 초점을 좀더 ‘집’에 맞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연집은 집을 단체명에 포함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집과 연관되어 있는 활동들을 실제로 실천해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2019년 6는 ‘쫓겨난 이들과 함께하는 거리의 연구자’ 컨테이너를 경의선공유지에 설치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연구자 사회주택 사업 추진을 위해 여러 교수·연구자 단체와 함께 ‘지식공유주택 추진협의회’를 결성했습니다. 연집이 ‘집’을 단체명에 포함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연집은 분명 학술운동 단체일텐데요―오늘날의 학술운동과 ‘집’의 관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집이라는 상징을 가져오는데 직접적 영감을 주었던 것은 ‘민중의 집’ 활동이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에 민중의 집이 새로운 진보 운동의 하나로 등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요. 민중의 집이 마포에도 만들어지고 구로에도 만들어지고 여러 군데로 확산됐었습니다. 그에 대한 책도 출판됐고요. 지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공간 문제에 관심이 있다보니 민중의 집이 어떤 곳일까 궁금했고 그래서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몇 군데 민중의 집에 답사차 방문을 한 적도 있습니다. 또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마거릿 콘(Margaret Kohn) 교수가 쓴 『레디컬 스페이스: 협동조합·민중회관·노동회의소』라는 책을 대학원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같이 읽기도 했었구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민중의 집이 유럽에서 활성화됐던 곳은 노동운동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남유럽이었습니다. 반면 계급운동으로서의 노동운동이 활발했던 서유럽, 예컨대 독일이나 영국에서는 민중의 집이 별로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도 노동자로서의 계급적 정체성이 뚜렷하여 하나의 이념과 정체성을 가지고 사람을 묶고 조직할 수 있는 곳에서는 민중의 집이 별로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입장과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연대가 필요한 사람들이 민중의 집이라는 공간에 모였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강한 규약이나 동의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공간의 사용과 관련된 느슨한 규약만 있으면 민중의 집에서는 공존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때는 싸우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공감대를 가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점이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힘이지 않나 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에도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의 뚜렷한 강령과 규칙으로 사람들을 조직하는 것은 아마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연대나 협력 없이 모두 따로 각자도생하기엔 세상이 너무 힘들구요.
저는 연구자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들만큼 개성 강하고 자존심 센 사람들도 없습니다. 연구자들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사람들이라 이들을 어떤 하나의 틀로 묶는다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공간을 공유하면 여러 연대의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저는 연집이 이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실이나 회의, 세미나 공간이 필요할 때, 잠시 편하게 쉬고 싶을 때, 온라인 강의를 위한 조용한 공간이 필요할 때, 동료 연구자들과 같이 밥 먹으면서 수다 떨고 싶을 때, 연집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다양한 연구자들이 연집 건물의 군데군데에서 회의, 세미나, 강연을 열고, 오다가다 만나면서 서로의 연구와 활동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로운 연대 방법으로서의 물리적 공간의 공유’를 고민한 것이 ‘집’이란 표현이 단체명에 포함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논의를 하면서 단순하게 물리적인 공간만이 아닌 온라인 공간, 즉 지식공유를 위한 디지털 플랫폼을 만드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플랫폼은 어떤 공통의 틀을 만들고 거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접속해서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이용하는 인프라이지요. 이따 말씀드리겠지만, 현재 지식공유 활동에서 중요한 것이 학술지 논문을 보다 개방적으로 공개하는 문제인데, 최근 연구자의 집이 이를 촉진할 수 있는 지식공유 플랫폼 만드는 작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플랫폼의 개념이 온라인 공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공간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만약 연구자의집 공간이 생긴다면, 이를 보다 자유롭고 좀 더 자율적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과 같이 운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연구자의집의 중요 모토 중의 하나가 “지식공유의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들자”입니다.
진행자 말씀해주셨듯이 성향이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최소한의 기준을 받아들인다면 함께할 수 있는 장으로서 공간을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연대를 하고 작은 것일지언정 어떤 운동들을 함께 실천하기 위해서는 같이 사용하는 공간을 넘어 공통적인 어떤 무엇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넘어 공통의 문제의식 같은 것들이 혹시 필요치는 않을지, 만약 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반을 통해 더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혹시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글쎄요 이를 어떻게 얘기해야 될지 조심스러워지는데요,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제약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무엇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될 수도 있겠고, 최소한의 기준으로 비판적 정신일 수도 있겠는데요. 물론 여기서 비판적 정신이 구체적으로 도대체 무엇인가 묻는다면 다시금 386스러운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구체화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불평등의 문제, 자본주의의 문제, 또는 최소한 기후위기의 문제와 같은 것이 될 수 있을텐데요, 그럼에도 이를 규약에 넣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니까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은 여기 모여라라고 규약에 쓸 수는 없지요. 그럼에도 이 연구자의집 기획 자체가 지식 공유에 강조점을 두는 것, 사유보다는 공유를 지향하는 것이니까요 이 정도를 기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지식공유와 새로운 학술운동의 과제
진행자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비물질적 플랫폼 같은 온라인에서의 공간들을 만들고자 하는 고민이 연집에 있었고 그래서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컨테이너를 경의선공유지에 들일 때에도 지식공유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을 뿐 아니라 2017년 말의 연집 구상에서도 지식공유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좀더 집중해서 질문을 드리면, 집이나 지식공유는 어찌 보면 90년대 학술운동의 과제나 화두라기보다는 비교적 최근의, 즉 2010년대 말 학술운동의 화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집 활동의 중요한 개념들인 집·지식공유·플랫폼과 관련해서 연집이 기존의 학술운동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중요한 질문인데요 사실 2017년 연집 구상에서는 지식공유라는 문제의식이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말 그대로 물리적 공간을 만드는 데 생각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8년 경의선공유지운동과 연결되면서 본격적으로 커먼즈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커먼즈네트워크포럼이 경의선공유지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커머닝한다는 것, 공유한다는 것이 실천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동시에 연집이 공간을 왜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접했을 때 이 공간에서 지식을 공유한다, 지식을 커머닝한다는 점이 우리의 존재가치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지식공유에 대한 고민을 2018년 초반부터 하게 됐습니다. 이후 지식공유라는 내용이 연집 활동의 핵심 중 하나가 되고 지금은 연집의 이름도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이 되었습니다. 2017년, 2018년 무렵에는 지식공유 대신 ‘시민과 함께하는 연구자의 집’이었는데 ‘함께한다’는 의미를 좀더 강화하면서 지식공유가 이제 전면에 나서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처럼 지식공유라는 아이디어는 경의선공유지운동과의 결합을 거치면서 연집 활동이 진화하고 구체화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지식공유’가 연구자의집이 기존 학술운동과 가장 크게 차이나는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와 더불어 공간전략을 사용한다는 것도 연집의 큰 차별점이구요.
지식공유라는 화두는 2019년 여름, 연집이 지식공유연대의 오픈액세스 운동과 연결되면서 더욱 더 중요해졌습니다. 앞서도 언급하였지만, 최근 연구자의집, 지식공유연대, 그리고 몇몇 IT기업과 더불어 지식공유 디지털 플랫폼 만드는 작업을 수행 중입니다. 저는 요즘 지식공유가 궁극적으로 학문생태계 및 대학개혁 문제와 깊이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식공유라는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으면 학문생태계를 개혁하거나 대학을 개혁하자는 얘기가 자칫 일부 학자들의 밥그릇 지키기 싸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겠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동안 교수/연구자운동에서 가장 중요했던 게 대학 민주화, 사학 개혁 등과 같은 대학 이슈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논의들에서 빠졌던 것이 지식공유라는 지향점이지 않은가합니다. 이것이 빠지다 보니 사람들의 눈에 대학을 개혁하자, 대학을 민주화하자는 얘기가 일부 교수 집단의 밥그릇 지키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 문제에 접근할 때 지식공유가 중심적 가치가 돼야 할 것 같고, 이 때문에 좀 더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올해 연집에서 학문자본주의(academic capitalism) 세미나를 8-9회 정도 할 예정인데, 이 기획도 이런 고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구자 권리선언의 의미
진행자 지식공유운동을 하면서 어떤 지식을 다른 연구자들과 그리고 시민들과 공유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어떤 지식을 생산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연집에서도 했던 여러 활동 역시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요 특히 무엇보다 더 ‘연구자 권리선언’이 연집에서 생산한 어떤 지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창립총회 이후 연집은 선언 초안을 마련한 다음 대학원생 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민교협, 학단협 등과의 토론회를 거쳐 최종본을 확정하고 2021년 11월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자 권리선언을 하게 된 문제의식과 그것의 함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연구자 권리선언을 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한국 연구자들의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는 현실에 대한 우려입니다. 연구자 노동시장은 엄청나게 양극화되어 있어서 정규직 교수인 연구자와 그렇지 못한 연구자 사이의 소득 격차는 극심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연구/학술/교육 활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여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게다가 위계적인 학문 사회의 풍토 속에서 교수, 강사, 학생 등의 신분 간, 학벌 및 성별에 따른 차별적 문화도 심각하여 많은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문제는 시장에서 쉽게 상품화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는 실용적 학문 보다는 기초 및 순수학문을 수행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더욱 심각한 형편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학의 신자유주의화와 학문 지식의 상품화가 심화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더욱 열악해졌고, 특정 연령대의 다수 연구자들이 대학과 학문 사회에서 제대로된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조만간 은퇴해야 할 처지에 몰려있기도 합니다. 또한, 젊은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학술 활동에 대한 의욕을 잃고 학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학문 생태계 전체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구자 권리선언은 연구자들의 이러한 열악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자 권리선언이 연구자 집단의 특수한 이익을 대변하자는 요구는 아닙니다. 오히려 연구자 권리선언의 진정한 의미는 첫째, 연구 활동의 사회적 책무를 명확히 해서 연구의 공공성을 증진하는 것, 둘째, 연구자들이 행하는 지식생산 노동의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는 것, 셋째, 학술공동체 내부의 차별과 착취의 문화를 개선하여 대학과 학문 생태계가 더 건강하게 작동하도록 하여 연구 활동의 사회적 기여도를 더욱 높이자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운동적 차원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이 가지는 중요한 의의는 그동안 교수·강사·대학원생 등 고등교육 체계에서의 직위에 따라 구분되어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연구자들에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즉, 교수건 강사건 대학원생이건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연구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했다는 것이 저는 연구자 권리선언의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같은 연구자이니까 서로 더 연대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전에는 예컨대 강사 문제에 교수가 무엇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습니다. 같은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이 당사자지 교수는 당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연구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면 강사의 문제건, 대학원생의 문제건 모두의 문제가 되어 무관심할 것이 아니라 같은 당사자로서 함께 연대하고 고민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연대감이 권리선언 만으로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러한 주체성을 만들어 나갈 바탕을 깔았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의 집의 향후 과제와 공간적 상상력
진행자 연구자 권리선언이 그전에는 나눠져 있었던 교수와 강사, 대학원생 등이 모일 수 있고 나아가 이를 통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은 연집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을 포함한 여러 운동들을 전개하고 있는데요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에 대한 것입니다. 물론 활동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열려 있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활동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신지, 그리고 연집이 한국 학계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연집 활동의 진화 과정을 쭉 말씀드렸는데요. 이 과정의 연장선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연집의 과제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입니다.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함께 온라인상에서의 공간을, 그래서 명실공이 연구자들이 지식공유를 실천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식공유연대와 두 곳의 IT업체와 더불어 학술지의 오픈액세스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지식공유 플랫폼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지식들이 공유될 수 있고 또 연구자들의 소통과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근에 어떤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지원을 요청하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요, 저는 이런 활동도 연집 플랫폼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까지는 연구자들이 계획서를 연구재단 등에 제출해서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연집 플랫폼에 계획서를 올리고 클라우드 펀딩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활동을 포함하는 식으로 연집 플랫폼을 좀더 체계화하여 구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새로운 연구자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울러 연집이 초창기부터 품고 있었던 ‘따로 또 같이’를 위한 공간전략은 계속해서 추구해 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제대로 된 물리적 공간을 만들지 못한 상황이라 매우 아쉽지만,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연구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 연집이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과의 관계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과 관련하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안타까운 측면이 있지만 저는 1980년대부터 지속돼 오던 소위 87년 체제의 종말을 요즘 우리가 목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진보의 가치와 비전이 무엇인가에 대한 학술적 고민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가치와 비전이 지금 어떤 학자와 연구자 집단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급하게 특정의 가치와 비전을 제시해서 대중을 설득하고 젊은 세대의 공감을 얻으려 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200%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미래 세대들이 할 일입니다. 다만 연집은 미래 세대가 새로운 진보적 가치와 비전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적이고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집은 미래 세대가 그러한 가치와 비전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지리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이시고 그래서 향후 학문적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배균 개인적인 학문적 과제, 관심과 관련하여 저는 요즘 더욱 더 기존의 상투적인 국가주의적 비판 담론 및 진보의 비전과 거리를 좀 두고 싶습니다. 사실 기존의 자본주의 비판과 계급적 관점은 국가주의 프레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과거의 사회주의 운동도 새롭게 보고 싶은데요, 과연 사회주의 운동이었는지 아니면 국가 만들기 운동이었는지 헷갈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어떤 새로운 진보적 담론을 구성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서 최근 저는 플랫폼 도시주의와 급진적 도시정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는 중 입니다.
저는 지리학자이다보니 사회의 다양한 정치경제적 현상을 사회공간론적 관점에서 독해해보려고 하는데요, 공간적 상상을 통해 바라보면 기존 사회과학이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사회공간적 상상 때문에 연구자의집과 같은 운동 방식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것 이구요, 저는 이런 관점에서 연구와 실천을 앞으로 구체화시키고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진행자 선생님의 향후 연구 계획을 포함하여 연집의 역사와 활동, 지향에 대한 고민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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