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구자의 집 회원 인터뷰4 (박철현 운영위원)

활동소식

인터뷰일시 : 2022년 7월 16일(토) 오후 4:00 ~ 5:0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박철현 (연구자의 집 운영위원,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연구교수)

진행 : 박서현 (연구자의 집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연구자의 집과 연구자 권리선언

진행자 :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연집)은 실천적 아카데미즘의 정신으로 신자유주의 지식생산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지식커먼즈를 구축하고 연구자들의 복지와 권리 증진을 이루기 위해 지난 2019년 1월 26일 창립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연집에 창립에 참여하시고 연집의 상을 함께 만드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연집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4-5년 전에 현재 연집의 운영위원장이신 박배균 선생님과 개인적 연구활동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어느 날 박배균 선생님이 연락을 하셔서 현재 연집에서 활동하시는 김민환 선생님과 함께 만났습니다.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이 모두 다 담당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연구자운동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운동에 함께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다른 선생님들과도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민교협과 구분되지만 관계가 아예 없지는 않은 연구자운동이 필요하다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운동의 내용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와중에 경의선공유지운동에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후 연구자운동을 처음 접했습니다. 물론 우선적으로 이는 제가 박배균 선생님이 센터장으로 있는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의 한국사회과학연구(SSK) 지원사업 대형단계에 결합했기 때문인데요, 공동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경의선공유지운동의, 더 크게는 커먼즈의 중요성과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경의선공유지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만났고 연집의 구성원도 참여하는 ‘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지식공유연대)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만났으며 연집에서 하는 사업 중 하나인 연구자 사회주택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경의선공유지운동에의 결합, 학술운동으로서 지식공유, 연구자의 복지·권리 증진과 관련이 있는 연구자 사회주택 사업이라는, 모두 연집과 관련 있는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집의 법인이 만들어졌습니다. 정리하면 제가 서울대 아시아도시사회센터의 SSK 지원사업에 결합한 것은 중국연구자로서 관심 분야가 도시나 공간이기 때문이었지만, 이러한 결합을 매개로 하여 제 전공과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경의선공유지, 지식공유, 연구자 사회주택에 한국사람이자 한국에서 살아가는 연구자로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진행자 : 말씀 감사합니다. 창립 이후 연집은 연구자 권리선언 초안을 마련한 다음 대학원생 노조·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한교죠)·민교협·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등과의 토론회를 거쳐 최종본을 확정하고 2021년 11월 연구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는데요, 선생님께서 김민환 선생님과 함께 관리선언 전문의 초안을 작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초안 작성 시 주안점으로 삼은 부분이 무엇인지 아울러 연구자 권리선언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연집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연구자의 복지이든, 공제조직이든, 학술연구 관련 법률제정에의 참여든 이러한 부분에 개입하려면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선언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그래서 연구자 권리선언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고 저와 김민환 선생님이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기초적 형태의 초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여성·대학원생·이공계·지방 등을 대표하는 연구자집단의 다양한 성원을 만났으며, 이분들이 연구자 권리선언의 주요 조항을 작성하는 주체가 됐습니다. 1년 동안 여러 차례 여러 연구자집단과 만나 선언의 내용을 수정·보완했습니다.

초안을 포함하여 권리선언 조항을 작성하는 데 참여한 사람들이 대부분 비정규직 연구자였습니다. 이에 권리선언이 비정규직 연구자의 권리요구가 될 경우 이익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데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습니다. 물론 비정규직 연구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지만 신분이나 성별, 전공과 상관없이 연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구자로서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편적 의미를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선언에 1600명 이상의 인원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서명하게 된 이유이지 않았나합니다.

연구자 복지법 구상

진행자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연구자 권리선언을 발표한 이후 연집은 연구자 복지법 토론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2년 4월 20일 제1회 토론회가 열렸고 7월 6일 제2회 토론회가 열렸는데요, 이후에도 계속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토론회를 기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제1회 토론회와 제2회 토론회의 주요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 토론회를 기획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박철현 : 권리선언은 연집이 주도하고 다양한 연구자집단이 참여하는 여러 차례 토론회를 거쳐 2021년 11월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민교협·한교조·교수노조·대학원생노조 등 다양한 연구자집단이 참여하는 ‘연구자 권리증진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만들었습니다. 공대위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의 의미를 공유하고 선언의 내용을 향후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논의했습니다.

정치적 선언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권리선언이 연구자의 실질적인 복리증진이나 지식공유, 학술장에서의 커먼즈구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형태의 어떤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법제화가 그 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구자 사회주택과 경의선공유지, 그리고 연구자의 복지와 권리 문제 중 우선적으로 연구자의 복지와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연구자 복지법을 만드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대부분의 성원들이 공감했습니다.

연구자 복지법 토론회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 토론회에서 예술인 복지법을 법제화하는 데 역할을 한 분들을 발표자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기존의 복지체계, 기존의 행정과 예산에 존재하지 않았던 예술인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복지법에 포함시킬 수 있었는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예술인과 연구자는 다르지만, 예술인 복지법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한 분들을 발표자로 모신 제1회 토론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선언의 내용이 법제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구체화·현실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와 어떤 식으로든 타협이나 거래, 협상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한다고 바로 법제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원한다고 행정이 바로 바뀌거나 예산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인이라는 이름으로 복지법을 만든 분들의 경험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예술인 복지법의 경험’을 제목으로 한 제1회 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제2회 토론회는 다양한 연구자집단의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 한교조분들을 모셨습니다. 강사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되어 많은 분들이 강사직을 잃은 상황에서 한교조는 강사법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자 복지법의 주요 당사자가 강사라는 점에서 강사를 대표하는 한교조분들을 모셔 복지법과 함께 연구자 복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한국연구재단 문제를 다루는 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당사자성과 노동자성, 법률 용어로는 근로자성이 예술인이 복지법체계에 들어가게 된 핵심적 부분이었다는 얘기를 접했습니다. 이는 연구자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합니다. 연구자 복지에 관한 부분이 행정부 예산체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연구자로서의 당사자성에 입각하여 연구가 ‘노동’임을 강조하여 설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2회 토론회에서 한교조분들을 모신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당사자성을 가진 대표적 연구자집단 중 하나로 대학원생노조를 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학원생노조에 연구자 복지법 관련 발표와 토론을 조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는데 대학원생노조의 상황으로 인해 제3회 토론회는 아직 미정인 상태입니다.

연구자 권리선언과 달리 연구자 복지법은 법안입니다. 초안이라고 하더라도 법안의 형태로 만든 다음 권리선언 때처럼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이 좋은데 법안이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접근성에 한계가 있는 부분, 달리 말한다면 법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자 권리선언 이후 법률 전문가분들과 접촉했음에도 여러 이유로 인해 복지법의 초안을 아직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다양한 연구자집단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사실 정치적 선언인 연구자 권리선언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울러 권리선언을 만드는 데 전문적이고 실무적인 어떤 능력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법안은 확실히 다릅니다. 우리가 원하는 식으로 법안을 만들어 예산을 확보하고 제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식으로든 국가를 상대하여 기존의 행정체계·예산체계·복지법체계에 연구자 복지법을 집어넣느냐가 관건이며 이를 위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법률전문가의 도움과 함께 복지법이라는 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아울러 행정이나 예산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이에 이런 분들과 접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행자 : 연구자 복지법이 복지법체계 안에서 자리잡기 위해서는 연구를 노동으로 이해하고 연구자의 노동자성을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과거에는 연구와 노동, 연구자와 노동자를 구분하는 경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동으로서의 연구, 노동자로서의 연구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선생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이 문제를 저는 연구자 복지법과 관련하여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복지법 토론회를 하면 연구가 노동이라는 점에서 연구자 복지법이 기존의 복지법체계 안에서 당연히 인정받아야 하며 국가는 연구자 복지를 위해 마땅히 연구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논의를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위성만으로는 이론과 경험으로 무장한 관료기구를 설득하여 복지법을 관철시켜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기 힘듭니다.

예술인 복지법의 경우 당사자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누구를 예술인으로 규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예술인 자신의 자각과 공감이 이루어졌습니다.

연구자 권리선언의 경우 초안의 1조가 연구자에 대한 규정이었습니다. 최종본에서는 초안의 1조와 2조를 합쳐서 1조를 만들었습니다. 초안에는 연구자가 예컨대 독립연구자나 고등학교교사, 학습지교사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올바른 얘기이지 않을까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연구자를 확대할 경우 국가와의 대결이나 협상 혹은 타협을 통해 복지법을 관찰시키는 데 과연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물론 연구자 권라선언에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에 소속된 사람으로 연구자를 한정하는 표현이 없습니다. 그러나 연구자 복지법의 경우에는 연구자의 규정에 제한을 둘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진행자 : 연구자 권리선언의 발표와 연구자 복지법의 구상은 연집의 대표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한데요. 연구자의 권리와 복지에 초점을 맞춘 연집의 활동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학술운동과는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성격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선생님께서 이전의 학술운동과 구분되는 연집 학술운동의 특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1980년대 후반에 민교협이 공식 창립했는데요, 당시에는 학술운동 또는 지식인운동의 주체가 이미 정규직 교수이거나 막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정규직 교수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당시에는 연구자의 권리와 관련이 있는 연구자 복지 향상을 위한 운동은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구자가 프레카리아트에 가까울 정도의 취약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연구자 권리선언이나 연구자 복지법이 연구자운동 또는 학술운동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합니다.

 

연구자의집 활동의 의미와 과제

진행자 : 말씀 감사합니다. 연집은 연구자 권리선언 발표와 연구자 복지법 구상 이외에도 경의선공유지운동에 결합했고 서울 강북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인문도시 사업을 성신여대 인문도시 사업단과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연집은 연구자 임대주택 등을 구상·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런 활동은 도시·공간의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중국사회를 연구하시면서 도시문제, 공간문제에 관심을 가지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연구해 오신 도시문제, 공간문제에 비춰서 도시에서 일종의 대안적 공간을 마련하는 실천을 전개하고 있는 연집 활동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도시나 공간이 제 학문적 관심사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저는 중국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로서는 제게는 도시·공간에 대한 연구보다 중국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사회와 관련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서 연구자나 학술인, 지식인 혹은 사회인으로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다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사실 중국연구자로서는 제가 연집에 참여할 이유가 없습니다. 연집의 활동은 중국연구와는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제가 도시와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연집활동의 상당 부분이 도시·공간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런 차원에서는 굳이 얘기하면 비슷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체제의 차이 또는 경험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집에서 주안점으로 삼고 있는 도시와 공간이 가진 어떤 학술적·운동적 의미를 중국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와 중국사회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도시나 공간을 연구하는 경우에는 한국에서 사회인으로서나 또 연구자로서나 연집 운동에 참가하는 것이 일정한 의미를 가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일본사회와 한국사회에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은 특히 사회주의 이후의 체제 경험에서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집활동의 의미를 중국연구자로서의 정체성과 바로 연결시키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연구에 있어서의 영감을 주는 부분은 당연히 있습니다.

결국 저는 한국의 사회인으로서 연집활동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참여하지만, 연집에서 함께 활동하는 선생님들이 대부분 자신의 연구와 연집활동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제 연구와 관련된 부분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다른 선생님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지역연구자, 말씀드린 일본연구자와 비교하더라도 꽤 차이가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혹시 연집에서 현재 실천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이외에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나아가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한국학계, 한국사회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저는 연집이 이미 굉장히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어떤 활동을 더 추가하면 힘들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많은 활동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때로는 버겁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집에서 학술부활동에 주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활동에도 그때그때 결합하고 있기 때문에 일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민교협활동도 하고 있는데요 지금 제36기 상임집행위원회가 새로 발족했는데 여기서 제가 일정한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 일이 많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뭘 더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과부하의 우려가 있으며 이에 오히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연집은 지금 하는 일을 굉장히 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인다역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재작년부터 계속 얘기했던 것이 인원 충원이었는데요 지금은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가 아니라 좀더 많은 사람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집이 우리사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과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한교조나 대학원생노조, 교수노조처럼 교수·연구자의 일부를 대표하는 연구자집단은 있었습니다. 연집이 기존 연구자집단의 각 부분이 가지는 전문성이나 당사자성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런 집단 모두에 관련된, 어떤 공통적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거의 최초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학술계에서 이른바 커먼즈라는 개념을 화두로 삼아 활동하는 거의 최초의 연구자집단이지 않을까합니다. 특히 연집이 커먼즈를 개별적인 연구자집단의 정체성을 초월하는 어떤 보편적 지향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성신여대 인문도시 사업단에서 하는 여러 사업에서도 커먼즈가 굉장히 중요한 개념으로 제기되는데, 이러한 점에서 연집이 커먼즈를 연구하는 동시에 조직의 운영원리로 삼는다는 측면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커먼즈를 사회운동이나 사회적 활동의 화두로 삼는 조직은 의외로 많은데요, 예컨대 여러 형태의 사회주택이 그렇고요, 또한 학문적으로 커먼즈를 연구하는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집은 커먼즈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부분도 있지만 조직과 활동의 차원으로 확장해서 다양한 실천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저는 연집이 한국사회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실은 제가 연구하는 중국에서는 커먼즈활동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크게 중요하지는 않습니다요. 왜냐하면 기존의 국가소유가 굉장히 강했고 개혁기에 들어서 자본주의적 사유화가 회귀하는 식으로 국가자본주의가 부상했기 때문에 커먼즈라는 논의 자체가 중국에서는 굉장히 척박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중국연구자로서는 사실 커먼즈가 다소 무관한 주제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 사는 사람으로서 커먼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운동의 언어로서의 커먼즈와 중국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필요

진행자 : 말씀 감사합니다. 커먼즈가 연구자운동의 언어가 됐을 때 연구자운동이 달라지는 측면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연구자운동의 언어로서의 커먼즈 개념이 가지는 어떤 독특함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몇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적으로 연집운동의 화두 중 하나가 된 지식공유를 들 수 있습니다. 문헌정보학에서는 지식공유가 연구대상일 수 있겠지만 사실 지식공유는 개별 학문의 문제라기보다는 개별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학문영역 전반에 걸쳐 지식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커머닝할 것인가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개별 학문에서 커먼즈가 가지는 의미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컨대 중국학의 경우에는 국가자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가자본주의의 특징인 사적 소유의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문제이지 커먼즈의 문제가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정치학이나 사회학에서도 커먼즈가 얼마나 중요한 분야로 부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지리학이나 도시학에서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서울과 지방,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학술계 전체를 구성하는 분과별 집단의 구분을 넘어 연구자집단 전체에 중요한 문제가 ‘우리 모두의 커먼즈’의 구성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커먼즈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자 복지법과 커먼즈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단순히 국가로부터 어떻게 더 많이 지원받을 것인가 혹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연구자가 어떻게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인가만이 아니라―현실적으로 이러한 부분을 부정할 수 없더라도―연구자집단 내에서 이른바 정규직 교수 같이 기득권을 가진 연구자가 자신의 기득권을 일정부분 포기하여 연구자집단 전체의 발전을 위해 커먼즈를 확보하는 식으로 연구자 복지법이 구성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연구자 복지법은 커먼즈를 구성하기 위한 토대가 될 것인데요, 연구자 복지법이 연구자들 사이의 차별이 폐지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구자 복지법과 함께 차별폐지가 동시에 진행된다면 커먼즈를 좀더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진행자 : 말씀 감사합니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났는데요. 마지막 질문이 될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향후 학문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 연구하신 중국사회학이 선생님께 가지는 의미, 나아가 중국사회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이러한 이해가 한국학계 및 한국사회에 가지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철현 :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추상적이긴 해도 앞에서 이미 얘기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관련된 얘기를 말씀드리면 사실 어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농민공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왜 한국도 아닌 중국에 대해서, 그것도 농민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라고 물음을 던졌습니다. 저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질문하신 물음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커먼즈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것이 이른바 공생공락(conviviality)입니다.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이 사는, 공생공락의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문화와 경험에 대한 진지하고도 균형잡힌 이해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중국과 관련하여 혐중과 반중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합니다. 특히 현장에서 중국에 대해 연구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는 이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최근에는 적자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많이 흑자를 보는 바로 옆에 있는 나라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말하듯이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같은 경제적 관심만이 아닌 ‘경제’에 대한 관심이 그리고 당과 국가의 문제로 환원되는 엘리트정치가 아닌 ‘정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차원을 주목하는 중국사회에 대한 관심이 정말 필요합니다. 평화와 공생공락의 동아시아를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균형잡히고 진지한 다른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중국사회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행자 :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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