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와 중국 인민들의 삶
강원대학교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손미아
1.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 위대한 실크로드
이번 실크로드 여행은 [연구자의 집]에서 주최한 것으로 2024년 7월 15일부터 7월 25일까지 중국 시안에서 둔황까지 실크로드를 답사하는 것이었다. 여행길은 인천을 출발해서 시안(西安, 서안) → 란저우(蘭州, 난주) → 시닝(西寧, 서녕) → 먼위안(門源, 문원) → 장예(張掖, 장액) → 쟈위관(嘉峪關, 가욕관) → 둔황(燉煌, 돈황) → 시안 → 화산(華山) → 시안을 거쳐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7월 15일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여 시안(西安, 서안)에 도착한 후 바로 서안북역(西安北站)으로 가서 열차를 타고 란저우(蘭州, 난주)에 도착했고, 란저우에서 둔황까지는 버스로 실크로드의 각 중점지역을 직접 찾아가서 보면서 답사했다. 7월16일 란저우에서 감숙성(甘肅省, 간쑤성) 박물관, 유가협(劉家峽) 댐, 병령사(炳靈寺) 석굴 가는 길, 황하석탑, 병령사 석굴, 중산교, 황하모친상(黃河母親像), 7월 17일 란저우에서 시닝으로 이동하여 시닝에서 타얼사(塔尔寺) 장의학 박물관(청해장 문화 박물관)을 답사했고, 7월 18일 시닝에서 먼위안을 거쳐 장예에 도착했다. 먼위안 유채밭에서 잠시 내려 유채꽃을 관람했고, 징양링(景阳岭) 고개를 경유하여 장예에 도착했다. 7월 19일에는 장예에서 대불사(大佛寺), 마제사(马蹄寺) 석불, 칠채산(七彩山)을 보고 장예에서 하루 더 숙박했고, 7월 20일 장예를 출발하여 가욕관(嘉峪關) 성루, 현벽장성(悬臂长城)을 답사후에 둔황에 도착했다. 둔황에서 7월 21에는 막고굴(莫高窟), 석굴문물 보존연구 진열중심(石窟文物保存硏究陳列中心), 둔황박물관(敦煌博物館)을 탐방했고, 7월 22일에는 옥문관(玉門關), 양관(陽關), 명사산(鸣沙山), 월아천(月牙泉)을 답사했다. 둔황까지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7월 23일 둔황에서 고속열차로 시안(서안북역)에 도착했고, 7월 24일 시안에서 병마용박물관(兵馬俑坑), 진시황릉(秦始皇陵), 화청지(華淸池),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을 둘러봤고, 7월 25일 화산을 오르면서 여행의 정점에 이르렀고, 7월 26일 한국 시안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함으로써 여행을 마무리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은 실크로드의 전체 길이 중에서 란저우에서 둔황까지의 역사적인 장소들에 직접 찾아가서 그 장소에 서 보고, 지금까지 그 길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고 배웠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이번 여행은 인류 역사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고 인류의 삶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실크로드로 오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란저우에서 둔황까지 왕복 약 2000km로 서울과 부산을 두 번 왕복하는 거리다. 중국 감숙성 박물관에 의하면, 실크로드가 처음 시작된 시기가 한나라 한무제시기라고 한다. 한나라, 진나라때 실크로드가 열렸고, 인구집단의 증가와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중국의 한족들은 티벳, 위구르, 퉁굴, 몽골 사람들과 같이 살았고, 과학기술에서의 무역 번성과 교환이 일어났는데, 특히 종이만드는 기술, 화햑 만드는 기술, 천문학, 의학 등의 교환, 티벳불교주의자들의 확산, 이슬람문화, 간수문화의 교류가 일어났다고 한다. 중국의 실크가 로마제국, 페르시아 등으로 전해졌고, 실크 짜는 기술이 서방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감숙성 박물관 안내문에는 실크로드의 시기가 자연 문화, 중원문화, 외국 문화의 자연적이고 유기적인 결합으로 문화의 발전, 중국 문화의 특별한 빛이 생긴 시기였다고 쓰여 있다.
실크로드 여행을 하면서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양 선현들의 교류와 소통, 이동, 삶을 느꼈다. 말과 낙타에 의존하면서 걸어야 했지만 미지의 세계를 오갔을 고대인들의 열정을 보았다. 실크로드를 개척한 고대인들의 위대함은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의 뜨겁고 건조한 날씨와 매서운 바람 그리고 먹을 거리 뿐 아니라 물도 제대로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을 개척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손들이 여전히 그 길을 가고 있다
이번 실크로드여행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 서북 지역의 문화가 서방세계로 이동했다는 것이었다. 고대이래 세계의 문명이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이나 실제 실크로드에 가보니 동방에서 서방으로도 귀중한 과학기술과 문화가 전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서양에서 동양으로 자본주의 서구문명이 이동했지만, 새로운 사회로 갈때는 이러한 점을 지양해서 각 지역의 문화를 서로 받아들이고 존중해야할 것이다.
실크로드, 서역으로 가는 길은 끝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이 길은 끝이 없다. 사안에서 둔황으로 가는 전체에서 시안에서 란저우 등 시안 가까이 있는 지역의 지형들은 초원지대로 해발 3000m이상 되는 산맥을 이루고 있으며 이 산맥들의 산등성이에는 양떼들이 있고 가끔 집들도 하나씩 보였다. 그런데 둔황쪽으로 갈수록 땅은 사막으로 변하고 이곳에는 해바라기와 유채꽃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특히 둔황에 다다르자 지형은 갑자기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둔황에 다다르자 TV 뉴스 등에서 황사보도가 나오고 밤에 모랫바람이 그 지역 전체를 휩쓰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황사를 피하기위해 지어진 집구조도 특이했다. 집은 대개 낮은 1층으로 벽돌로 지어졌다. 집들은 벽돌로 만들어진 두꺼운 담벼락에 겹겹이 가려져 있었다. 지붕 높이에 이르는 담벼락이 집 전체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으며 지붕을 감쌀정도로 높았다. 매서운 돌바람을 피하기위한 방도인 것 같았다.
실크로드를 직접 따라가면서 실크로드를 개척했던 사람들의 여정을 살펴보면서, 중국 서북쪽 황하강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그 척박한 사막에서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온 사람들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이들의 살아왔던 인생의 발자취 자체가 인류의 발자취이고 역사이다. 이들은 지금도 살아있고, 그래서 실크로드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진 1. 실크로드 가장 서쪽 지역인 가욕관의 만리장성

사진 2. 실크로드 위에서 본 가옥들 1

사진 3. 실크로드 위에서 본 가옥들 2
2. 황하에서 기원한 인류의 아름다운 문화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황하에서 기원한 인류의 아름다운 문화를 보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중국 서북 지역의 아름다운 문화를 엿볼수 있었고, 그 역사를 만든 이들이 중국의 중심을 지배했던 사람들만이 아닌, 소위 당시 주요 세력들에 의해서 이민족이라고 불렸던 여러 종족들이 이 지역에서 삶을 살아낸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의 문화는 황하에서 시작되었고 황하가 중원문화의 중심이 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황하는 강이라기보다는 땅이었고, 중국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만 한 거대한 땅이었다.
황하는 매우 길고 넓다. 어느 지역은 바다와도 같고 그러면서도 어느 지역은 강이 땅으로이어져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어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거대하게 흐르는 황하가 사람들의 집앞에까지 다가와 사람들의 젖줄이 되고 사람들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도와주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서는 서로 만나기 어려웠을텐데, 거대한 땅을 감싸고 있는 황하강을 따라서는 비교적 이동이 쉽고, 서로 왕래할 수 있었을 것이고 가축과 농작물도 기를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황하는 중국의 거대한 뜨거운 땅덩어리를 적셔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황하는 강 주변의 땅(육지)과 거의 수평적으로 맞닿아있고 경계가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바다의 뻘처럼 강기슭이 넓게 펼쳐져있는데, 강이 범람하는 땅이 옥토가 되고 농작물 생산의 최적지가 된게 아닌가? 우리가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이 거대한 물줄기를 본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중국 중심에서 벗어나 변방에 살았던 이민족, 또는 소수민족이었다. 실크로드를 지나면서 중국에는 한족뿐 아니라 다른 여러 다른 종족들이 중국 땅에서 살았던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었고, 중국의 문화가 한족중심의 문화가 아니고 여러 종족들의 문화가 혼합되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한족이 허베이성(河北省)의 산하이관(山海關에서 간수성의 쟈위관까지 만리장성을 쌓았어도 이 실크로드를 따라 광막한 대지에는 그곳에 살았던 여러 종족의 사람들에 의해 문명이 이루어졌다.
한 예로 감숙성 박물관에서 전시된 중국에서 서북지역의 이민족들의 벽화는 고구려 벽화들과도 매우 유사해서 그 시기에 여러 종족들이 문화를 공유해온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실크로드를 오가는 길 위에는 그 시대에 삶을 보여주는 여러 개의 박물관들이 있다. 이 박물관들은 제각기 그 지역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지역 사람들의 식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아름다운 문화, 청동기, 실크, 옥, 은세공, 한자, 인쇄술 등이 있다. 특히 간수(감숙성) 지역은 중국의 초기 청동기가 발견되었던 지역들중 하나라고 한다. 박물관 안내문에는 청동기문화시기에 말을 사육하면서 경제 발전과 소통의 발전을 가져왔고, 그리하여 중국에서 서쪽과 동쪽 문화의 채택과 확산이 이루어지는 가장 초기의 전선이 이루어지는 시기였다고 한다.

사진 4. 감숙성 박물관에서 본 벽화 1

사진 5. 감숙성 박물관에서 본 벽화 2

사진 6. 감숙성 박물관에서 본 벽화 3
시닝(서녕)에서 티벳 불교의 보고인 타얼사와 장의학 박물관에서 중국에 있는 여러 종족들의 저력을 볼 수 있었다. 장의학 박물관에서는 티벳의학이 중국의학의 시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티벳의학에선 아주 기본적인 건강에 관련된 비법들이 전해 내려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잘자고 잘먹고 바르게 행동하는 방법”을 보여준 것이다. 티벳의학에서는 사람의 일생을 볼 때, 태어나서 해와 달처럼 장수하고, 소년 때는 공작처럼 피부색이 선명하고, 청년 때는 준마같이 힘차고, 장년 때는 코끼리같이 건장하고, 사자같이 용맹하며, 노년때는 16세같이 건강하고, 회춘하여 아이가 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보여주고 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가지는 불교문화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법령사, 마제사석굴, 대불사, 돈황 석굴 등 여러 불교 유적들을 답사했다. 불교문화를 소개하는 안내자들과 박물관의 안내문 등에는 이 위대한 불교문화를 만들어낸 것에 비해 만든 사람들의 아주 소박한 원, 그것은 바로 실크로드를 지나는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것이라고 한다. 얼마나 소박한가? 그 밖에 고대인들의 원은 또 무엇이었을까?
고대 중국의 문화 중에 불교문화가 많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현재에도 남아 있는 유적지들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고대 사람들의 삶과 문명이 발전해 온 것을 느낄수 있었다.
초창기 부처의 모습은 티벳 사람들의 얼굴 형상인데, 시공간이 흐르면서 점차 우리에게도 익숙한 모습인 중국 사람들의 얼굴을 보이고 있다. 부처의 모습이 인간을 닯았고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종교 세계는 현실 세계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상기되었다. 종교가 기원에서부터도 한층 인간다운 것처럼, 종교는 ‘신의 존재’의 차원에서 의미있는게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지혜’의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한 바위산마다 그 어려운 고행을 하며 돌로 흙으로 부처를 만든 그들의 원은 무엇일까?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가장 귀중했던 것은 중국 서북 지역에서 여러 종족들이 만들어낸 문화유산을 접할 수 있었다는데 있다. 이번 여행은 단지 남겨진 문화유산을 감탄하는 차원이 아닌 인간이 아름다움과 삶을 추구해나갔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사진 7. 병령사에서 본 초기 부처의 모습: 티벳 불교에 가까운 부처의 모습

사진 8. 병령사 석굴에서 본 누운 부처 모습: 현재 중국의 부처 모습을 닮았다.

사진 9. 티벳의학에서 말해주는 인간이 일생을 거쳐서 살아야할 모습:

사진 10. 둔황시에 있는 만리장성 두 관문(옥문관, 양관)중의 하나인 양관: 둔황시의 남쪽으로 75km 떨어진 곳으로 서역으로 통하는 남쪽의 관문

사진 11. 둔황시에 있는 만리장성 두 관문(옥문관, 양관)중의 하나인 옥문관: 둔황시의 서북쪽으로 98km 떨어진 곳으로 서역으로 통하는 북쪽의 관문

사진 12. 둔황시에 있는 만리장성 두 관문(옥문관, 양관)중의 하나인 옥문관: 둔황시의 서북쪽으로 98km 떨어진 곳으로 서역으로 통하는 북쪽의 관문

사진 13. 물 한점 없는 사막에서도 자라는 풀과 나무들
3. 중국 인민들의 삶: 실사구시의 삶
중국 인민들은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것 같았다. 이번 실크로드에서 중국 인민들, 특히 중국 서북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볼 수 있었다. 과하지도 않으면서 구체적으로 실질적인 삶을 살아내는 중국인민들의 모습에 감복했다.
중국 인민들은 매우 실질적인 삶을 살고 있고 생산을 잘하는 것 같다. 중국의 거의 모든 상품들이 우수했고 사용자의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해 봤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것들이어서 더 호감이 갔다. 또한 건축기술도 매우 뛰어난 것 같았다. 광막한 사막을 개발하는 흔적들, 예를 들면 풍차 발전기, 땅 개간, 사막에 수로 설치, 사막에 나무심기, 오아시스형태를 만들기,등 가는 곳마다 건설중인 건축물들이 있어서 매우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가는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데도 항상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길가 농민들은 직접 수확했을 것 같은 수박, 메론, 복숭아, 자두 등을 펴놓고 조금씩 팔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방금 밭에서 나온 듯 태양을 머금은 구리빛이었고 군살 하나 없는 농민의 모습이었다.
중국 사람들의 실사구시를 느낀 것중 또 하나는 어떤 일을 매우 진지하고 성실하게 한다는 흔적이다. 중국 화산을 오르면서 놀랐던 것은 가파른 화산에 계단을 설치했는데 계단마다 나무로 만든 계단이 아닌 돌계단을 만들어놓아 계단의 영구적인 보존과 유지가 가능한 것 같았다.
중국 인민들의 삶에서 음식은 가장 으뜸이다. 약이 되는 중국의 음식문화다. 중국 인민들은 음식 뿐 아니라 건강한 먹거리에 진심인 것 같았다. 중국 인민들은 자연에서 인류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무엇을 먹으면 건강한 지를 알고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는 중국의 화려한 요리가 감탄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음식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재료들에 대해서 중국 인민들이 어떻게 얼마나 고민해왔는지를 느끼게 되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음식도 매우 지혜로왔다. 국수에 들어간 육수, 콩, 고기 고명 등을 볼 때, 국수 하나로도 영양이 충분했다. 중국 인민들이 즐겨 먹는다는 훠거에는 생선육수, 콩, 곡식, 야채 등이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 중국 인민들이 얼마나 영양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두부의 종류도 여러 가지인데 영양을 고려하여 식재료를 잘 활용하고 있었다. 두부를 발효시키기도 하고, 얼리기도 하고, 말려서 채쳐서 국수에 넣기도 한다. 연근을 얇게 썰어 요리한 것, 생선이나 돼지고기 소고기들을 찌거나 볶아서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영양 손실을 가급적 줄이는 것 같았다. 콩의 경우 국수에 콩 삶는데 그대로 넣기도 하고, 샤브샤브에 각종 콩이 들어가기도 한다. 버섯류의 경우 생전 처음 보는 갖가지 버섯들을 사용한다. 생선류의 경우 생선찜 등으로 음식을 매우 영양가있게 조리한다. 양고기의 경우 간단히 양념해서 그대로 숯불에 굽는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주로 야채와 볶아서 음식으로 내놓는다.
중국의 차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 사람들이 간식으로 먹는 해바라기 씨앗, 매실 말랭이, 호두를 넣은 대추 말랭이 등등 거의 모든 음식이 자연재료들을 거의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영양가 있는것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것들이 중국에서는 일상적인 간식거리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기껏해야 매실액으로 음식의 양념으로만 들어가는 매실이 그 자체로 새콤달콤하게 반쯤 건조되어 간식용품으로 시장에 나오면 사람들은 이것을 매우 즐겁게 먹는다. 중국의 요구르트 등 유제품도 품질이 아주 좋았다. 길거리에서 내놓고 파는 것들은 수박, 멜론 등 매우 영양가있는 자연산 농산물이었다.
그동안 한국에 들려왔던 중국의 나쁜 음식 이미지, 예를 들면 멜라민(공업용 화학물질) 분유사건, 화학물질로 만든 계란 노른자 사건 등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고, 궁극적으로는 중국의 먹거리들이 인간의 건강에 유익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중국에서는 채소를 생으로 먹지 않고 주로 익혀서 먹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중국 인민들의 음식문화는 참으로 지혜로운 경지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 선현들의 경험을 그대로 간직하고 실천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총체적으로 중국의 인민들은 주어진 자연조건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잘 활용하고 있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사진:14. 중국의 영양가있는 먹거리들
4. 중국식 사회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중국에 대한 가장 큰 화두는 “중국이 사회주의인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 중에서도 중국이 표방하는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있었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본 놀라운 것 중 하나는 중국 공산당 정부가 인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주의에 대해 많은 홍보를 하는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회주의에 대한 구호들이 있다.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 선동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변방인 이곳 서북쪽 끝에도 사회주의를 선전하는 문구들이 커다란 붉은 글씨로 세워져 있다. 사회주의의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대적인 사회주의 기치와 사회주의 홍보에도 중국의 경제는 오히려 더욱 거세게 자본주의적 발전의 속도를 최대로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최근 들어 중국 인민들의 사회적 계급 격차, 농촌과 도시의 지역적 격차, 자본주의화의 후유증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들을 머릿속에서 지울수는 없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왜 “사회주의 이념”을 표방하고 홍보하는 것인가? 실제 중국 정부는 중국이 사회주의 사회라고 믿고 사회주의 이념을 선전하는 것인가? 진정 중국의 사회주의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중국 정부 지도부의 신념과 의지의 표현인가?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용어와 이념이 중국 인민들을 통제하기에 더 효과적이어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중국 전통의 철학과 윤리 도덕이 사회주의 이념과 비슷하여 이전부터 내려오던 철학, 윤리, 도덕에 사회주의 이념을 포함시킨 것인가?
중국 정부가 진정 인민들을 위한 사회주의를 펼치겠다면 중국에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다 근절되었는지를 파악해야하고, 만약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남아있다면 그 착취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 착취가 어느정도인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등을 분석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게 한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사회주의 이념” 공세와 자본주의적 행보에 대해서도 중국 인민들은 크게 동요하지않고 체제보다 실제 삶을 중시하는 것 같다. 중국사람들은 체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보는 것 같다. 어떤 지도부가 들어오는가?에 따라 달라지지만, 그 어떤 지도부도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고 보는 것 같다. 그 변화에도 그 땅의 인민들은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것이다. 지구의 내륙의 한 복판, 그 뜨거운 사막에서도 살아갔듯이 말이다. 결국 중국대륙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이들은 소수의 지배세력이 아니라 대다수 인민이다.
실크로드라는 삶의 현장에서 역사의 주체는 인민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삶의 현장에는 중국 정부 지도부는 없었고 그곳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들은 그들의 삶을 발전시켜 갈 것이다. 그 험한 태산고도에서도, 그 뜨거운 사막에서도, 그 허허벌판의 초원에서도, 인민들이 새로운 중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중국 정부가 하고 있는 “사회주의 이념” 선전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주의냐? 아니냐?라는 의구심들에 대한 대답은 중국 인민들의 행보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중국 인민들이 주체가 되는 때가 오길 바란다. 중국이 진정 사회주의를 원한다면 좀 더 발전되고 진실된 사회주의를 하면 좋겠다.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볼 때, 중국 인민들을 충분히 그럴 능력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에서 볼 때, 중국의 사회주의는 이제 곧 중국 인민들에 의해 발전되어야 한다.

사진 15. 중국 시안 중심가에 세워진 사회주의 선전 문구
5. 전 세계적인 연대의 필요성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는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실크로드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방 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여러 지역과 연대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과하지도 않으면서 실질적인 삶을 살아내는 중국 인민들의 모습에 감복했다. 중국 인민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삶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대로는 아닐수도 있으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을 민족, 국가라는 용어로 묶어 두던, 아니던 말이다.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점은 중국 인민들이 외부 사람들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방인들과 거의 소통을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쪽 지역보다 서북 지역이 더욱 이방인들과 소통이 안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원 문화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중국 중심 우월성과 세계관 때문은 아닐 것이다. 중국 정부가 이를 하지 못한다면 중국 인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의식적인 공동체 실천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반성이 들었다. 한국 사람들도 국내의 문제에만 천착해있지 않은가? 한국 정부가 아시아 노동자들을 자본주의의 ‘산업예비군’, ‘산업인력’ 취급을 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반대해야하지 않은가? 우리가 너무 안일하게 한국 정부의 정책을 방관내지는 수용하고 있는게 아닌가? 최근 한국 정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 ‘외국인 요양보호사 제도’를 두어 아시아지역에서 가사도우미(가사근로자), 요양보호사 들을 대거 도입하고 있는데, 이들의 인권과 노동권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다면 노동력의 착취와 남용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시아, 중국 인민들과 한국의 인민들이 공존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한다. 옛 실크로드의 역사가 무색하지않게 후손들은 그 길을 다시 연결해야한다. 실크로드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자면 그것은 전세계적인 연대의 필요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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