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박한 연구찐담 후기 (현우식 제주대 사회학과 대학원 박사수료)

활동소식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이준형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과는 올해 1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 진행하는 겨울방학 세미나인 <민중적 민주주의>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박사과정 수료를 앞두고 있었고, 비슷한 연구관심을 갖고 있는 연구자 동료를 찾는 중이었다. 제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거치며 쌓아왔던 문제의식을 다른 지역의 연구자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다. 라클라우(Ernesto Laclau) 이론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계획하고 있었던 나에게 급진민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 관련 문헌들을 다루는 <민중적 민주주의>은 좋은 기회였다. 물리적인 거리로 인해 온라인으로 참여해야 했지만, 이준형의 재치있는 진행과 참여자들의 열띤 참여 덕분에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그 인연으로 2월에는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 학술교류제에 이준형을 토론자로 초청하게 되었고, 3월부터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에서 <연대와 협력의 조건>이라는 세미나를 함께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연구자의집>으로부터 이준형의 박사학위논문인 「한국 셀러브리티 포퓰리즘의 형성 과정에 특성에 대한 연구」을 주제로 하는 행사에 토론자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받았고,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신박한 연구찐담>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행사는 매우 진지하고 몰입도 있게 진행되었다. 다른 토론자로 참여하신 지주형 선생님께서는 분석적 관점에서 연구가 보다 이론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점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다. 나는 이 연구가 우리에게 남겨준 질문인 “셀러브리티 포퓰리즘 시대에 좌파 포퓰리즘은 어떻게 가능한가?”는 질문에 대해 몇 가지 실천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응답하고자 했다(자세한 발표문과 토론문 내용은 <연구자의집> 홈페이지 아카이브 탭을 참고하라). 토론 말미에 나는 머지 않은 시일 내에 공동의 작업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두보를 적극적으로 마련해보겠다는 약속을 드렸다. 여기서는 그 약속과 관련하여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그 문제란,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이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란 대중적인 삶과 일상, 경험으로부터 억압적인 사회·경제·문화적 구조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일련의 학술적 전통을 말한다. 영국 현대문화연구센터(CCCS)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신문방송학과를 중심으로 제도화되었다. 비판사회학(critical sociology)은 좁은 의미에서는 80년대 초반 상도연구실에서 산업사회연구회(84년), 산업사회학회(96년), 비판사회학회(07년)를 중심으로 하는 학맥을 의미하며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지배적 질서와는 다른 방식의 사회적 권력관계를 만들기 위해 비판적 지식을 생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학적 전통을 말한다. 신문방송학과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한 이준형이 주로 전자의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면, 사회학과에서 비판이론을 공부하는 나는 주로 후자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이준형과 나의 연구는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급진민주주의와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도 상이한 궤적을 그린다. 이준형의 연구가 문화연구의 탈정치화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스튜어트 홀(Stuart Hall)과 같이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할 수 있는 국면분석을 추구한다면, 나의 연구는 마르크스주의 이후 이렇다 할 준거점을 찾지 못하고 여러 이론들을 배회하고 있는 비판이론 연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라클라우를 중심으로 하는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데 있다. 한편에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수용자 대중 주체들의 소박한 저항성을 찬미하면서 문화자본주의에 포섭되어 가고 있는 문화연구의 현실이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대중적 삶과 괴리되면서 현실 개입능력을 상실하고 게토화되고 있는 비판이론 연구의 현실이 있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자면, 이준형과 나는 연구를 통해 각자가 속한 학술장의 질서를 재구조화하기 위한 일종의 상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징투쟁은 각자가 속한 학술장을 포괄하는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에서의 비판적 지식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를 겨냥한다.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의 만남이라는 문제도 결국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없다. 혹자는 인문사회과학의 ‘황금기’인 80년대를 떠올리며 오늘날 비판적 지식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과거보다도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관점의 비판적 연구가 생산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지식 생산이 고도로 제도화·전문화된 상황에서 집합적 실천을 통해 비판적 지식이 재생산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연구재단 프로젝트와 대학 임용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제도개혁만을 요구하는 입장도, 제도 밖 학술운동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는 입장도 한계에 부딛힐 수밖에 없다. 오늘날 보다 긴급히 요구되는 것은 제도냐 제도 밖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대학 통·폐합 기조라는 변화하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비판적 지식의 재생산이라는 거대 담론(grand narrative)을 다시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의 만남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고 공동의 실천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개입적인 실천을 필요로 하는 문화연구의 요구는 비판사회학에 의해서, 대중문화와 미디어 정치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필요로 하는 비판사회학의 요구는 문화연구에 의해서 보완될 수 있다. 이는 단지 이준형과 나의 개인적 협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 전통의 영향 아래 연구하고 있는 많은 연구자들에게도 해당하는 문제이다. 가령 다른 토론자로 참석한 지주형 선생님의 연구는 추상적인 논의에 경도되어 있는 비판이론 연구와는 달리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적 궤적과 지구 정치경제와의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사회학 연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책세상, 2011)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박한 연구찐담>은 형식상으로는 선배연구자, 신진연구자, 후배연구자로 구성되었지만,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의 만남이라는 주제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공동의 작업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두보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겠다는 약속은 단지 인사치레는 아니었다. 최근 이준형과 나는 장기적으로 <이데올로기와 담론분석>이라는 이름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머지 않은 시일에 토론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그 외연을 확장해나갈 예정이다. 자원도 역량도 부족하지만,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참여하고 있다. 바라건대 이 프로젝트가 문화연구와 비판사회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확장하고 심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연구자의집> 회원분들을 포함하여 많은 선배/동료 연구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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