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들의 재잘재잘 2탄 후기 (최은철 서울대 지리교육과 박사과정)

활동소식

오래된 사진첩을 넘길 때, 우리는 깊은 추억에 잠기게 된다. 먼 옛날, 사진 속의 가족, 학교 동기, 그리고 나,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얼마나 활기차 보이던지, 또한 그때 그 시절의 감정과 생각들은 지금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그 사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때의 모습을 잊어버렸을 것이고, 유감이 쌓였을 것이고, 자책감까지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진을 담는 방식이 잘못되었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아닌 그때, 사진은 소소한 일상의 일부가 아니었다. 필름의 소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켜는 것만으로 큰 짐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졸업이나, 결혼, 친척 모임, 여행, 행사 등 주로 특별한 순간에만, 그 소중한 시기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나는 이것이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눈부신 순간들을 담는 것은 다음주나 내년의 ‘그 시절 사람들(조금 먼 미래)’을 위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확인하길 바랐다. 그 사진들은 특별한 순간을 강조하거나 조직된 포즈를 취해서 담겼다. 당시에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으며, 자신의 최고와 최상의 모습을 선보여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후, 우리의 마음을 끌게 될 것은 그런 장면들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시대 특유의 표정으로 가족 이야기를 나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 젊음의 향기를 머금은 부모님이 바쁘게 요리하느라 움직이는 모습, 초등학교 시절 동창들과 함께 아무 걱정 없이 수업을 듣는 순간일 것이다.

커피 향을 흘리며 책을 읽던, 그 순간은 당연한 일상이라 생각했다[赌书消得泼茶香,当时只道是寻常]. 하지만 이런 일상의 조각들은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항상 마주하는 것들은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여겼으나, 이제는 어릴 때 집의 모습, 읽던 책을 놓던 책상, 4년 동안 잤던 침대까지도 머릿속에 그리지 못한다.

현재, 우리는 사진의 배경에서만 집의 마당을 상상하며, 사람들의 무심한 상호작용 속에서 그 시절의 이야기를 되새기게 된다. 우리는 사진 속, 단순한 소품으로 사용된 것의 정체를 명확히 알고 싶어 한다.

사진과 영상을 찍을 때의 올바른 방식은, 마치 미래에서 돌아온 기록자가 되어 이 시절 일반인들의 일상을 남기는 것이다. 인위적인 포즈보다는 자연스러운 순간을 포착해야 하며, 모든 것을 한 번씩 찍되, 특히 익숙한 풍경과 순간들을 담아야 한다. 30년 후의 우리는 지금의 스마트폰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이상한 눈초리를 받던 자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발표자의 ‘후기[后记]’ 작성은 사진을 남기는 것처럼 반짝이는 순간을 기록하기보단 대표적인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발표자의 관점에서 아래와 같이 적어보았다.

“ ‘재잘재잘’ 참여자가 많아서 그런가, 아니면 흰색 플라스틱 의자의 부피가 커서 그런가, 책상을 중심으로 빼곡뺴곡 앉으니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앉을 자리가 없을 것 같다.

오늘의 발표자라 그런지 긴장되고, 긴장되고 긴장된다. 긴장함을 얼굴에서 나타내지 않으려고, 또한, 발표 시작 전, 앉아있는 동안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열심히 옆자리 사람과 Icebreaking을 시도해 본다.

탈권위적인 발표 자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서 참석자마다 가명을 쓴 명찰을 가슴에 달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명찰은 참 좋은 Icebreaking의 대상이 되었다.

권위와 위계가 없이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어색해서인가, 아니면 참여자들이 서로 반말을 해대는 것이 생소해서인가, 그것도 아니면 평시에 ‘상사’였던 사람에게 ‘보복’하는 것에서 오는 쾌감 때문인가, 다들 초면에 서로 반말하면서 어정쩡한 웃음으로 서로의 거리감을 줄여갔다.

다들 열심히 웃어주고 있지만, 아마 발표자들은 나처럼 책상 아래에서 발표할 순간을 기다리면서 소리 없이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것 같다. 분명히 웃고 있으면서 옆 사람과 가명의 사연을 나누고 있지만, 책상 위에 마련된 음료의 양은 줄고 있다. 아마 긴장해서 목이 타는가 보다.

발표가 시작하면서 의자를 쟁취 못한 이들은 의자에 앉은 사람들 뒤쪽에 서서 듣고 있었다. 이런 배치는 일반적인 발표 분위기와는 달랐다. 이들은 마치 권위 있는 평론가 아닌, 물건을 파는 상가의 주변에서, 소비자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상품을 고르는 느낌과 유사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의외로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만들어냈고, 그 결과 발표는 전체적으로 나쁘지 않게 진행되었다. 추후에 회상했을 때, 그 발표가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발표가 끝나서는 분명 권위와 위계가 없는 환경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엄숙하다. 엄숙함은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것과 매칭되는 단어로 생각하기 쉽지만, 발표자의 신분으로 ‘재잘재잘’에 참여하게 되면 탈권위적인 엄숙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양한 학과, 학교, 직장, 신분, 연령대 및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의 창작물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은 작품의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는 예상했던 코멘트들에 대해서는 금방 이해가 되었으나, 예상치 못한 코멘트가 나올 때마다 잠시 당황함을 느꼈다.

나에게 있어 발표의 목적은 작품의 실행 가능성과 그로 인한 흡인력에 관한 피드백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발표 중 얻은 피드백은 내게 정해진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 될지에 대한 조언이었다. 다시 말해, 참여자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안 된다’는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발표자의 위치에서나 토론자의 위치에서나, 이번 연구 모임의 순간순간이 깊은 만족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소중한 선물 같았고, 다가올 3차 모임의 순간들을 기대하며 그곳에서 다른 재잘 주제들을 재잘재잘하고 싶다.

 

가명: 사령관

  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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