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집 회원 인터뷰8 (정정훈 운영위원)

활동소식

인터뷰일시 : 2023년 10월 17일(화) 오후 3:00 ~ 4:0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정정훈 (연구자의집 운영위원,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 전임연구원)

진행 : 박서현 (연구자의집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의 활동 및 사업단과 연구자의집의 관계

 

진행자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연집)은 “대학 안과 바깥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학술운동을 통해 실천적 아카데미즘을 복원[하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커먼즈’를 만[들며] ‘연구안전망’ 구축을 위한 연구자들의 상호부조 방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월 26일 창립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연집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저는 연집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결합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른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연집에서 활동하시는 이승원 선생님께서 어느날 전화를 하셨습니다. 연집에서 성신여대와 함께 인문도시사업단을 꾸리게 됐는데 사업단의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할 의향을 물으신 것이었습니다. 제안을 받은 이후 최갑수 선생님, 박배균 선생님, 이승원 선생님과 만났습니다, 이승원 선생님과는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왔지만 최갑수 선생님과 박배균 선생님은 이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친분은 없었는데요, 만나뵙고 당연히 술 한 잔을 하며 얘기하다 보니 필요하고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울러 제가 일자리가 필요했던 상황이기도 하여 전임연구원이 되면 좋겠다,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만이 아닌 연집의 일도 같이 해달라라고 조건을 말씀하셨고 연집 활동에 대해서는 말씀드렸듯이 필요하고 의미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같이 하게 됐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은 ‘커먼즈(commons)로 인문 강북 만들기’라는 주제로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 인문도시사업에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업단의 설립 이유와 구체적 활동 그리고 사업단에서 이러한 활동을 전개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울러 사업단과 연집의 관계도 궁금합니다.

 

정정훈 말씀드렸듯이 저는 사업단이 인문도사사업에 선정된 다음 전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제안받은 것이었고 사업단의 연구책임자이신 성신여대 지리학과 이원호 교수님이 사업단을 설계하시는 과정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업단이 설립된 구체적 맥락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에 사업단의 전임연구원으로 일을 하고 또 연집에서 활동하며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하여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기본적으로 연집은 지식커먼즈 활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지식커먼즈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가 관건이 될텐데요, 커먼즈는 사람들의 공유·참여가 활동의 중요한 기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활동 자체가 커먼즈이기도 할 것이고요. 또한 활동의 기반이자 활동의 성과를 커먼즈라고 할 수도 있을텐데요, 연집에서 커먼즈 활동을 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기반이 필요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커먼즈는 국가나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활동을 이념적으로 표방합니다. 그러나 물적 기반이 없는 상황에서 소수의 대학교수와 대다수의 시간강사,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평등한 참여와 민주적 운영을 통해 지식커먼즈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돈도 없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 등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식커먼즈를 만들 수는 없을텐데요,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당연히 기존 제도, 국가가 운영하는 학술제도 안에서 제도를 활용하는 것, 제도를 최대한 커머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인문도시사업은 교육부 산하의 한국연구재단에서 시행하는 사업인데요, 사업에 선정되면 국가학술제도를 통해 커먼즈를 실천할 수 있는 자원들, 제도적 기반들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인문도시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닐까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측면이고요, 두 번째 측면은 커먼즈 활동을 알릴 수 있는 어떤 대외적 창구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식커먼즈에 대하여 그리고 지식커먼즈를 실천하는 방법에 대하여, 성신여대가 강북구에 있으니, 특히 강북구 주민들에게 알리고 나아가 서울시민, 한국사회에 알릴뿐 아니라 인문도시사업에 강사나 발표자로 연구자를 초청함으로써 다양한 연구자들에게도 알리는 소통창구의 역할을 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부분 중 커먼즈와 관련하여,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은 본래 ‘연구자 공동체 사회주택’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자 공동체 사회주택’은 연구자들의 공동공간으로서의 커먼즈를 만드는 사업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업단의 주제 ‘커먼즈로 인문 강북 만들기’에서도 ‘커먼즈’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사업단에서 특히 ‘커먼즈’를 중심으로 인문도시사업을 구상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말씀드렸듯이 제가 사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참여한 것이 아니어서 사실 잘 모르는데요, 마찬가지로 들은 것을 토대로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연집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이 있는데요, 연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 학계 선생님들이나 일반시민들과 얘기하다 보면 연구자 공동체 사회주택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연집의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연집은 처음에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숲길이 되어 유명해진, 한국철도공사가 소유한 공덕역 부근의 경의선 철길 땅의 투기적 개발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땅을 시민이 함께 활용하는 커먼즈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운동에 일련의 연구자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경의선공유지라 불린 해당 부지에 불안정연구자 등이 서울에 올 경우 쉴 수도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사실 서울의 연구자들도 모여서 공부도 할 수 있고 쉴 수도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얘기는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논의만 이루어지다가 실질적 실험을 경의선공유지에 컨테이너를 넣는 식으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경의선공유지운동에 깊이 관여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기는 했지만 저는 컨테이너를 넣겠다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의도와 시도는 좋았지만 컨테이너를 들여오다 제지됐고 결국 넣지 못했지요.

저는 경의선공유지에서 했던 운동이 연집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들께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커먼즈의 실천적 가능성과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고 연구자들이 커먼즈 운동에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라는 경험적 토대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경험이 결국 경의선공유지운동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이라는 단체를 설립하게 되는 바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름을 왜 ‘연구자의집’으로 지었을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연구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쉐어하우스를 만들겠다는 생각만이 중요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오늘날 연구자들 자신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면서 불안정노동자로서의 연구자들의 권리를 증진하고 보장하는 활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닌가합니다. 이탈리아 사회센터 운동들, 즉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민중들이 서로 교류하고 같이 활동하며 지역에 거점을 만들어가는 운동들에 영감을 받은 ‘민중의 집’ 운동이 있는데요, 저는 민중의 집에서의 집의 의미가 연집의 집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집에서 핵심적 활동은 커먼즈 운동에서 비롯됐고 그 중요성을 연집에 참여하는 연구자들이 느꼈으며 이러한 느낌을 바탕으로 불안정연구자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어떻게 시민들 혹은 대중들과 공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커먼즈를 연집의 핵심적 키워드로 만든 것이 아닐까합니다. 그리고 커먼즈를 실현하는 방식 중 하나가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단의 커먼즈로 인문도시만들기 사업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특징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연구자 공동체 사회주택에 대한 구상은 연구자의 상당수가 소위 ‘프레카리아트’, 불안정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연구자 자신의 대응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대응은 아마도 예컨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학술운동과는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성격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데요, 이전의 학술운동과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이 문제를 다루는 논문을 썼는데요 (웃음) 민주화운동시대 혹은 변혁운동시대의 학술운동은 민중의 해방을 위해 복무했습니다. 이는 고통받는 민중은 따로 있고 연구자는 고통받는 민중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민중이 고통받고 있기 때문에 연구자들, 지식인들이 소위 앙가주망의 형태로 자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지식을 통해 현실에 개입하여 민중해방을 위해 민중현장에 복무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학술운동이 복무하고자 하는 민중현장이 자신의 현장이 됐습니다. 즉 과거에는 민중해방을 위해 학술운동이 있었다면 지금은 자기해방을 위해서 학술운동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장 억압받고 고통받는 민중의 한 집단이 불안정연구자들 혹은 학문후속세대들이 돼버린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학술운동은 자기해방적인, 이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자구적인 실천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학술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자기해방은 직업적 안정, 소득 안정과 같이 먹고사는 문제들에로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체로 학술운동은 주로 인문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오늘날 학술운동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는 대다수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의 직업적 안정성이 굉장히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인문사회과학 자체가 대학과 한국사회에서 주변화되는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취업에 별 도움이 안 되고 학계에서 인문사회과학 학과로 진학하는 학생도 점점 더 줄고 학생이 주니 교수도 필요 없어지고, 교수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교육은 시간강사나 계약직 교수에게 맡기게 되는 상황에서 특히 비판적인 인문사회과학의 학문적 활동공간 자체가 매우 축소되고 있습니다.

연구는 연구자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당연히 상호소통을 전제합니다. 우리가 논문을 쓰거나 책을 쓰거나 아니면 어떤 비평문을 쓸 때에도 적어도 공개되어 있는 장 즉 학술지나 웹사이트, 언론 미디어 등에 글을 쓴다면 이는 다른 누군가가 보라고 쓰는 것이지요. 이렇게 보라는 것은 그에 대한 응답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받은 응답에 대해 다시 응답하고 싶어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이 더 심화되고 체계화되며 새로워지는 체계적인 지식생산 소통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의 소통적 생산체계 자체가 지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들이 공부할 권리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문사회과학에서는, 거대한 협업 프로젝트가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개별적 연구주제에 따라 공부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개별적 연구가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도 분명하고요. 그런데 지금 먹고 살기 위해 자기 관심사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고 관심사에 따라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이렇게 한 공부를 소통할 수 있는 연구의 권리, 공부할 권리, 지식을 생산하고 소통하며 재구축할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이러한 역할을 해주는 것이 대학제도였는데요, 이 제도가 심각한 기능부전에 빠지면서 불안정연구자들 자신이 공부할 권리를 위해 그와 같은 체계나 장 혹은 인문사회과학 생태계를 만드는 활동을 하는 것이 현시대 학술운동의 중요한 특징, 한국사회의 본격적인 신자유주의화 이후의 학술운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합니다.

정리하면 불안정연구자로서의 사회경제적 위치에서 먹고 살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측면이 하나이고 위기에 처한 인문사회과학 연구체계 복원을 통해 공부할 권리, 연구할 권리를 구축하기 위한 측면이 다른 하나입니다. 물론 이 두 측면은 상호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두 측면이 오늘날의 학술운동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 아닌가합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날의 학술운동을 자기해방적 실천 혹은 자구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자구적 혹은 자기개방적 실천으로서의 연구가 담아내야 하는 연구의 내용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제가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성찰성(reflexivity)이라는 개념이 있는데요, 성찰성이라는 말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에게 되돌아오는, 재귀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지요. 성찰성에 대해 말씀을 드린 것은 연구자들의 특징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인데요, 연구자들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세상에 대해 다소 관조적 태도를 갖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실천적 연구를 하는 경우에도, 가령 한국사회의 계급불평등에 대해 연구하는 경우에도 이를 연구하는 순간 연구자는 연구대상인 계급불평등과 거리를 두게 됩니다.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얘기가 감정적 토로가 돼서는 안 되겠지요. 물론 자기기술지 같은 방법이 있지만 이러한 방법이 일반적인 것도 아닐뿐더러 저는 자기기술지 방법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도 있습니다. 여하튼 연구자가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과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실 저는 연구자의 자기해방적 혹은 자구적 활동을 직업 안정성 내지는 소득 안정성에 관련된 활동이라는 의미에서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연구자만이 아니라 모든 불안정노동자들이 직면해 있는 과제가 바로 이 직업 안정성, 소득 안정성일텐데요, 이러한 점에서 불안정연구노동자의 자기해방적인, 자구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라는 정체성에 입각하여 연구자가 수행하는 연구의 내용이 자구적 차원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기한다면, 저는 말씀드린 성찰성이라는 측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급불평등 문제를 예로 들면 계급불평등 문제가 이제 연구자 자신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저기 공장에 있는 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인 것인데요, 이 때문에 자기가 비판하고 성찰하고 개입하려는 문제를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공부하고 강의하고 논문쓰는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가져오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 자기가 처한 조건에 대한 연구가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는 한국의 아카데미즘이 어떻게 자본화되었는가. 상품화되었는가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대학서열의 문제 그리고 수도권 집중문제와 같은, 인구절벽과도 관련이 있으며 한국사회에서 인문사회과학 지식이 가져야 하는 위상과도 관련이 있는 복합적 문제들에 대해서 연구자가 자기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연구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연구자들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아니 연구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기상황을 학문적인 관점, 언어로 정리하고 분석하여 이를 통해 전체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연구는 지적 훈련을 받은 연구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들의 연구의 출발점이 아마도 이런 것이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행자 앞으로 아주 강렬한 연구가 진행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웃음) 공감이 되고 이런 연구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정훈 질문을 하셔서 얘기한 것이지만 사실 박서현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지식공유연대에서 이루어지는 지식공유와 관련된 연구 등도 이와 같은 실천적 연구가 아닐까요? (웃음)

 

 

중간지원조직으로서의 연구자의집

 

진행자 네, 오늘날의 학술생태계에 대한 비판적 진단 속에서 지식공유연대의 지식공유운동이 일어난 측면이 있고 운동이 일어나다 보니 지식공유문제에 대한 이론적·성찰적 접근이 필요했던 부분이 있지 않은가합니다. 다음 질문은 연구할 권리를 구축하기 위한 학술운동의 측면과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연집의 학술운동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연집은 영문명이 Scholars’ Commons일 뿐만 아니라 창립선언문에서도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커먼즈’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오늘날의 학술운동에서 커먼즈가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일단 저는 연집이 사회운동 용어로 말하면 중간지원조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이 활동을 후원하는 대중이나 시민 혹은 국가, 때로는 자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이를 매개하면서 자원을 갖고 있어서 혹은 자원을 받아서 현장의 활동가들에게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간지원조직인데요, 많은 경우 재단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집이 기본적으로 중간지원조직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연집이 중간지원조직을 표방하지만 자원동원능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연집은 연집에 참여하는 분들의 역량이나 네트워크를 통해 자원들을 모으는 것을 모색하는데요, 이런 측면에서는 성신여대 사업도 일종의 자원동원 방식일 수 있습니다. 연구재단의 인문도시사업에 선정되어 받게 된 연구비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지식커먼즈를 구축하는 활동들을 벌여 나가고 불안정연구자들을 초청하여 강의와 발표를 하는 활동들이 이러한 성격을 가진 대표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이 내년 6월에 끝나는데 그때까지는 못하겠지만 내년이나 내후년 에는 연구자 사회주택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연구자 사회주택은 LH에서 강북구 미아동 쪽에 만들게 될텐데요, 연구자 사회주택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를 만들도록 촉발하고 상담을 진행한 단위 중 하나가 연집이었습니다. 연구자 사회주택이 만들어지면 주변시세의 50% 이하로 특히 불안정연구자나 흔히 학문후속세대로 불리는 대학원생들이 이 공간에 입주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질 텐데요, 이와 같은 활동이 직접적인 자원동원을 통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활동들 이외에도 연집은 연구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화·법제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불안정연구자를 위한 연구자복지법에 대한 구성이 있고 복지법의 법제화를 위해 먼저 연구자권리선언을 했습니다. 서명운동을 거쳐 연구자권리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복지법의 법제화를 위한 논의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구자복지법이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겠지만 법률을 만드는 과정도 연구자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방안을 마련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연집은 중간지원조직의 성격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연집의 또 다른 측면은 이런 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직 잘 판단하지 못하겠습니다만 말씀드린 인문사회과학 연구생태계를 확장하는 것 혹은 대안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특히 제가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 활동은 이러한 활동들인데요, 한국사회에서 대학이 기업화된 이후 인문사회과학은 계륵 같은 게 되어 버렸습니다, 없앨 수는 없는데 있는 것은 싫은 것이지요.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인문사회분야 학술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주는, 지구생태계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불안만큼 저는 인문사회과학분야 학술생태계가 붕괴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불안이 있는데요, 실제로 붕괴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학 내에서 인문사회과학의 공간이 확 줄어들고 지원이 사라지더라도 공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연구자복지법을 포함하여 다양한 지원제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텐데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와야 하고 이런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된다는 점입니다. 대학에서 철학과가 사라지고 사회학과가 사라지고 보편적 학문이 숨을 쉴 수 없게 되더라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겠지요.

대학에는 없지만 딴 데 가면 이런 공부를 할 수 있는 데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는 자기 작업을 할 수 있으며, 글을 쓰면 함께 읽고 논평하고 토론하여 또 다른 지식을 생산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모여서 세미나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학술지를 만든다고 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지식공유연대가 하는 오픈엑세스 운동이나 교수노조, 비정규직 교수노조에서 하는 시간강사의 신분보장·임금보장·권리보장 운동, 대안적 학술운동 단체에서 하는 대학에서 안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연구활동들이 접속되고 연결되어 하나의 체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저는 연집이 이런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성과가 많이 나왔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연집이 일정부분 해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대안적 생태계를 구성할 때에는 커먼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진보적이나 비판적인 연구자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세상은 이래야 된다고 하면서 동종교배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인데요. 비슷한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지요. 이것이 생산성이 있다는 점에서 나쁘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다른 입장의 저서를 도무지 진지하게 읽지 않는다거나 다른 입장에서 나온 얘기들을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서 이것은 무슨 입장이네 저것은 무슨 주의네 하며 치는데 저는 앞으로는 이러면 정말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주의를 넘은 소통이 필요한데요 이것이 바로 커먼즈의 감각이 아닐까합니다. 사실 무슨 주의이든, 가령 요즘 유행하는 신유물론이든, 과거의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이든, 들뢰즈이든 네그리이든, 고전적인 해겔주의적 마르크주의이든, 입장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장을 더 치열하게 만들고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열린 소통을 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내가 공부했던 것은 물론 내 머리 안에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저 내 것인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공부한 것이 사회화되는 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화를 담당했던 제도가 다 붕괴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사회화의 어떤 틀을 자율적으로 구축하고자 할 때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 입장이 서로 교통되어야한다는 생각이 중요하고, 이러한 교통을 위한 연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교통과 교통을 위한 연결이 커먼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커머즈를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공부해 본 바로는 어떤 땅을 공유하거나 집을 공유하는 것 못지않게 이런 교통과 소통, 그리하여 함께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며 이것이 곧 커먼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커먼즈에 입각하여 새로운 인문사회과학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새로운 인문사회과학 생태계의 구축에 있어서 핵심이 커먼즈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커먼즈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대안 연구 공동체에서의 활동

 

진행자 말씀하신 새로운 인문사회과학 생태계의 구축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께서는 현재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활동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에서 활동하시기 이전에는 수유너머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고요. 연집을 포함하여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이나 수유너머는 모두 대학 밖에 있는 대안적 연구자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 오래 전부터 이러한 대학 밖의 연구자 공동체에서 활동해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 2023년 4월 15일에 열린 마포-신촌 학술단체 모임 학술 토론회와 7월 1일에 열린 마포신촌지역 네트워크 행사를 주도적으로 기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이러한 행사를 기획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정정훈 저도 학생운동을 하면서 관련 저서들에 관심을 가지고서 공부하러 여러 곳을 다녔는데요, 당시 1990년대에는 마르크스주의의 헤게모니가 끝나고 소위 포스트주의라 불리는 푸코, 들뢰즈 등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학교 밖에서 정말 다양한 새로운 지적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공부를 쭉 대학 밖에서 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이에 대해 제일 잘 아시고 국내에 소개도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셨던 곳들에서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제가 한때 활동했던 공간 수유너머에는 이진경 선생님, 고병권 선생님 같은 분이 계셨고 또 박서현 선생님을 만났던 지금은 다중지성의 정원이라 불리고 당시에는 다중네트워크센터로 불린 곳에서는 네그리 세미나를 했습니다. 주류 아카데미즘에서 안 하는 공부에 관심이 생기다 보니 특정 분야의 학문 즉 사회학이나 정치학, 철학을 하는 것보다 좀더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비판적·진보적 학문을 가르치는 다양한 대학 밖의 연구 공동체들 혹은 학술단체에 나가서 공부를 했고, 이렇게 공부하다보니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수유너머에 소속되어 활동했었는데 수유너머 공동체는 많은 헌신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활동하다가 수유너머가 분열하면서 수유너머N에서 활동을 했고 수유너머N이 다시 분열하면서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을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 현재에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문화연구를 가르치는 대학원에 가서 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요, 대학원의 인력 내지는 중력이 다소 작은 신설학과를 졸업한 것이었습니다,

마포신촌지역 학술단체 네트워크는 앞에서 말씀드린 얘기들이 다 연관되어 있는 것인데요, 인문사회과학이 일반적으로 위기라고 할 수 있고 특히 현존 질서, 기존 체제에 비판적인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은 더더욱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 공부를 하는 단위들이 있습니다. 마포신촌지역에 있는, 제가 소속되어 있는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이나 현대정치철학연구회,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등 여러 곳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단위들이 각개 약진하면서 자기의 공간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식으로 재생산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수유너머나 다중네트워크센터, 철학아카데미 등 2000년대에 형성된 공동체가 자기의 몸집을 키워가던 방식이 끝나고 지금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연구단체들을 모아 하나의 장을 만들고 이 장 자체를 성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장이 만들어졌을 때 연집 같은 제도적 차원에서 변화를 이루기 위해 활동하는 그룹들이나 지식공유연대의 활동과도 접속돼서 말씀드린 어떤 생태계를 재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대안적 생태계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4월에는 장애인 권리예산 투쟁에 연대하는 마포신촌 학술단체 모임 학술 토론회를 했었고 7월에는 연집과의 연결을 위한 마포신촌지역 네트워크 행사를 했으며 성신여대 인문도시사업에서 하는 인문주관 사업에서도 이런 단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학술대회를 진행하는 식으로 연결과 교통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인문사회과학 생태계로서의 지식커먼즈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인권 연구의 의미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이제 선생님의 개인적 연구와 좀더 관련된 질문일 텐데요. 선생님께서는 약 10년 전 『인권과 인권들: 정치의 원점과 인권의 영속혁명』(그린비, 2014)를 출판하셨고 최근에는 『인권의 전선들: 한국 2세대 인권운동의 형성과 전개』(당대, 2023)을 출판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인권을 연구해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선생님께서는 장애인과 이주민, 빈자와 같은 소수자에 대한 배제·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서 소수자의 연대와 정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러한 고민을 하셨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선생님의 이러한 연구와 관심, 고민이 연집에서의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정훈 저는 우연한 계기로 인권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인권단체와 인권중간지원조직의 후원을 받아 2010년에 제주인권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제주도에 모여 3박4일간 인권 관련 발표와 토론을 했는데 정말 우연찮게 초대를 받았습니다. 초대를 받게 된 것은 제가 학부생 때부터 이주노동자운동과 관련된 활동을 했었고 석사논문을 한국이주노동자운동, 이주노조로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는 이주노조로 독립했지만 그전에 이주노조는 일반노조의 한 지부인 서울경기인천지역평등노조로 존재했습니다. 저는 평등노조에 활동가로 결합하여 이주노동자운동을 쭉 해왔었는데 운동에서 만났던 분들이 제주인권회의에 가게 되면서 제게 발표와 토론을 요청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주노동 관련 인권활동가들을 만난 이후 쌍용자동차집회, 강정마을집회 등에 갈 때마다 제주인권회의에서 만났던 분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인권운동이 지극히 옳은, 지당한 얘기를 하는 운동, UN만 선호하는 운동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가장 전투적이고 가장 치열하게 투쟁하는 분들이 인권운동 활동가들이었습니다.

2012년에 용산참사유가족들, 강정마을사람들 그리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함께 한 전국대행진이 있었는데 저는 진행요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쌍용의 s, 강정의 k 그리고 용산의 y를 따서 sky, 스카이액트라고 불렀는데요, 이 활동을 인권활동가들이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전국대행진을 하면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인권과 인권이 충돌하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인권이 자유주의적 권리로 알려져 있는데 인권활동가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는 점에서 이를 더 공부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스카이액트 활동을 하면서 생겼던 질문들을 바탕으로 공부한 것을 모은 것이 『인권의 전선들: 한국 2세대 인권운동의 형성과 전개』입니다.

이후 계속해서 인권단체 활동가들과 여러 활동들을 하고 또 공부를 하면서 한국인권운동사가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노동운동사나 민주화운동사는 정리되어 있었고 다양한 소수자 운동들은 꽤 정리되어 있었지만 인권운동 자체의 역사는 정리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박사논문을 한 동안 안 쓰다가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현장연구를 기반으로 한 작업이었고, 잘 아는 현장이 인권운동현장이라서 박사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제일 잘 아는 한국인권운동에 대해 쓴 박사논문이 「한국 2세대 인권운동의 형성과 전개」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낸 책이 『인권의 전선들: 한국 2세대 인권운동의 형성과 전개』입니다. 제 연구 주제에 대해서는 위와 같이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소수자라고 흔히 얘기되는 장애인이나 이주민 혹은 빈자 등에 대해서는 제가 이를 연구하지만 저는 소수자운동이 기존의 노동운동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자나 네그리가 말하는 다중, 모두 의미있는 개념들이지만 저는 저항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학문적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실천적 관심도 있고요. 주변화되고 배제되며 권리침해로 축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권리주체가 되어가는가라는 문제에 저는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제가 사람들의 권리 주체화, 정치적 주체화를 연구해야지라고 생각하고서 연구를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런 사람들이 보이니까 연구를 해왔던 것인데 제가 한 연구를 돌이켜 보니 저의 관심사는 정치적 주체화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배제되고 박탈당한 사람들의 정치적 주체화가 어떤 계기로, 어떤 자원을 통해, 어떤 힘을 통해 이루어지는가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세 번째 책을 쓰려고 기존에 썼던 글들을 최근에 쭉 모아보고 있는데 글들의 주안점은 언제나 정치적 주체화였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치적 주체화와는 다소 다른 정치적 주체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러다보니 많이 연구된 노동계급이나 대규모 사회운동보다는, 사회적 파장을 크게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고투를 벌여가면서 권리주체가 구성돼온 영역들과 이러한 영역들에서 이루어진 활동들에 대해 연구를 해왔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연집에서 현재 실천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이외에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한국학계에서 담당해야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말씀드렸던 것처럼 불안정연구자가 바로 배제된 자, 소수자인데요, 이러한 점에서 연구자들이 이에 대한 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될 것 같습니다. 또 연집은 불안정연구자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위한 토대라기보다는 어떤 지렛대·받침대·도약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사회통합에 대한 연구의 과제

 

진행자 마지막 질문인데요, 세 번째 저술에 대해서도 짧게 얘기해주셨는데요, 선생님께서 향후 학문적 과제를 포함하여 학술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정훈 저는 요즘 그전에는 잘 생각하지 않았던 연구주제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사회를 생각하면서 제가 좀 보수화되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예전에는 사회변혁이 저의 주안점이었는데 요즘에는 사회통합입니다. 보수적으로 되었는데요. (웃음)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체계가 사회일텐데, 공존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법과 제도가 필요하고 윤리·도덕 같은 연성규범도 필요합니다. 사실 연성규범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연성규범, 윤리나 도덕 혹은 발리바르가 말한 시빌리떼(civilité)가 더 중요할 수 있는데요, 시빌리떼는 시민다움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시민공존으로 번역하고 하는데, 저는 요즘 시빌리떼가 말 그대로 일종의 예절인 것 같습니다.

사람을 믿고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존중하는 활동, 이러한 심성과 이로부터 우러나는 행위가 곧 예절일테요, 저는 이러한 예절이 사회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인터넷에서의 조리돌림, 온갖 갑질, 최근의 묻지마 범죄 등 여러 사회문제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소위 헬조선 담론이 등장하던 때부터였으니 1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계속 확인하면서 저는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어떤 정서적 혹은 윤리적 감각이 지금 다 붕괴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감각이 붕괴되면 정치적 연대도 불가능해집니다. 남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타인을 이해하는 것, 타인 때문에 자신이 손해볼 수 있다는 것, 타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어와 같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분노, 원한일텐데요, 저는 이러한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 사이의 사회적 유대가 사라지고, 유대가 사라지는 상황에서는 서로에 대한 원한의 정념들, 의심의 정념들이 판치게 될텐데 이런 상황에서 사회가 어떻게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어떤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혹은 사회적인 실천이 무엇일까를 공부해야겠다고 요즘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말씀을 잘 드리지는 못하겠는데요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진행자 말씀 감사합니다.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는 여러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의 향후 연구적 실천에서도 기대가 되고요,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여러 고민을 나눠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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