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연구자의 집 회원 인터뷰7 (정영신 운영위원)

활동소식

인터뷰일시 : 2023년 7월 17일(월) 오후 8:00 ~ 9:30

장소 : 줌 온라인

인터뷰이 : 정영신 (연구자의 집 운영위원, 가톨릭대 사회학과 조교수)

인터뷰어 : 유정 (연구자의 집 미디어팀, 서경대 인성교양대학 전임교수)

이소영 (연구자의 집 미디어팀, 제주대 사회교육과 부교수)

박서현 (연구자의 집 미디어팀, 제주대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전임연구원)

사회운동과 커먼즈

박서현 ‘지식공유 연구자의집’(연집)은 “대학 안과 바깥의 다양한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유연하게 연대할 수 있는 수평적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학술운동을 통해 실천적 아카데미즘을 복원[하고]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 커먼즈’를 만[들며] ‘연구안전망’ 구축을 위한 연구자들의 상호부조 방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2019년 1월 26일 창립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연집에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초기에 연집을 만든 선생님 대부분이 경의선공유지운동에 참여하셨는데요, 저도 경의선공유지에서 간접적으로 활동하면서 자연스레 연집 선생님들을 만나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경의선공유지운동에 참여하면서 연구자들이 무엇을 할 것이냐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이처럼 경의선공유지운동을 통해 연집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연집을 처음 고민하는 과정에서 연집의 운영위원장이신 박배균 선생님을 포함한 몇몇 선생님들에게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라는 문제의식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식이 경의선공유지운동과 만나서 연집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연집에 동참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연집의 초창기에는 제가 제주에 있었고, 이후 부천에 올라와 학교에 적응하며 여러 일을 하게 되면서 연집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2022년 여름 강릉에서 개최된 커먼즈 네트워크 워크숍에 참여하신 박배균 선생님께서 연집에서 정규직 교수가 하는 일이 너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서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후 좀더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학술운동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공감하고 있었고 비정규직 연구자들, 대학 밖의 연구자들과의 교류·연대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도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식 자체를 커먼즈(commons)로서 공유하는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커먼즈 연구와 운동을 하면서 생각했던 것이어서 마찬가지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집에서 함께 활동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연집에서 활동하시기 이전에 커먼즈 네트워크를 조직하시고 커먼즈에 대한 연구만이 아니라 커먼즈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활동을 모색·실천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연집의 영문명이 Scholars’ Commons일 뿐만 아니라 창립선언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집은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식 커먼즈’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먼저 선생님께 커먼즈가 무엇인지 문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적 실천에서 커먼즈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오늘날의 사회운동에서 커먼즈가 왜 중요한지 문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영신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분이 제게 커먼즈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질문의 의미에 따라서 다르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에서 커먼즈를 어떻게 찾을 수 있냐 또는 커먼즈의 효용이 무엇이냐라는 관심 하에 커먼즈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커먼즈는 공동의 것,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답변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커먼즈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관심 하에 커먼즈의 의미에 대해 이론적으로 질문을 한다면 ―커먼즈 연구를 하면서 커먼즈의 본질, 핵심적 특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가 답변하기 쉽지 않은 물음이었는데요― 저는 커먼즈는 인간이 사회적 활동 속에서 맺게 되는 어떤 특정한 사회적 관계 또는 이러한 관계의 양식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설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경우 특정한 사회적 관계의 양식에서의 ‘특정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중요할텐데요, 커먼즈의 구성 혹은 운영 원리에서 가장 핵심적이었던 것은 자치와 협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치와 협력에 기반을 둔 어떤 사회적 관계의 유형을 커먼즈라고 불러야 될 텐데요, 하지만 커먼즈가 추상적인 사회적 관계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커먼즈에는 어떤 매개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물질적인 혹은 비물질적인 어떤 자원이나 공간 등이 커먼즈에는 언제나 매개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자원이나 공간을 매개로 하여 자치적이며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들을 맺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계는 자동적으로 형성된다기 보다는 갈등이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규범이나 규칙과 같은 제도들을 발전시키게 되면 커먼즈는 지속성을 띠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자원이나 공간을 매개로 해서 사람들이 그 자원과 공간을 함께 이용하는 과정에서 형성하게 되는 자치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와 제도를 커먼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커먼즈라는 현상의 본질을 설명한 것입니다.

경험적으로 커먼즈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커먼즈의 구성요소를 생각하면 되는데요 많은 활동가, 연구자가 커먼즈를 자원과 제도 그리고 공동체가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경험적으로 우리가 어떤 것이 커먼즈냐를 파악할 때는 유용한 답변일 수 있는데요, 하지만 이 구성요소들이 그저 있다고 해서 혹은 기계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커먼즈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오히려 이 구성요소들이 사람들 사이의 활동이나 관계 속에서 구현되어 있을 때, 그 구현되어 있는 체계를 커먼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대사회는 정치체계로서의 근대국가와 경제체계로서의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지배적 원리로 하여 구성되어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국가와 시장경제라는 두 체계, 구조는 근대사회를 만들어내고 발전시키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예컨대 근대국가의 경우에는 이전의 왕권이나 신분제에 의한 자의적 통치를 줄였고,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자연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줄이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공동체의 경계 밖으로 확장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긍정적 부분이 부분적으로 있었지만, 현재는 그 한계가 훨씬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컨대 최근의 뉴스에서 매일 같이 등장하는 폭우나 폭염 문제는 당연하게도 기후위기의 한 양상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의 측면에서 보면 근대국가와 시장경제는 사회문제의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그것의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그것의 무능력하고 비효율적인 측면이 드러나고 있는 것인데요, 따라서 어떤 대안적인 사회영역을 좀 더 확장하고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스스로를 구분하던 지역공동체운동이나 협동조합운동, 마을만들기나 마을재생운동 등 아래로부터 자체적으로 이루어진 여러 운동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들은 대부분 단기적이거나 미시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한계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지속가능하며 대안적인 사회적 영역을 발견하고 이를 이론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미시적 영역에서의 실험이나 성공 사례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거시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할 필요가 있는데요, 저는 커먼즈 논의가 이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커먼즈는 역사 속에서 수 많은 경험적 사례를 지니고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커먼즈의 역사를 살펴보면, 장기적·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자치적이며 협력적인 커먼즈의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다만 미시에서 거시로의 전환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커먼즈 논의도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커먼즈를 가능케 한 거시적 조건들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이론화가 필요합니다.

둘째, 커먼즈의 핵심적인 원리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을 상대화하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예컨대 자치의 원리는 국가로의 권력집중이나 관료제화, 즉 사회문제를 기술관료적으로 해결하는 방식들을 상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협력의 원리도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 속에서 이윤 획득만을 위한 삶이 아닌 인간성이나 인간의 존엄을 우위에 두는 삶의 원리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원리가 커먼즈의 구성과 작동 원리들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커먼즈의 원리가 대안적인 사회구성의 원리로 100%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여러 다른 급진적 논의들과 결합하여 대안적 사회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는 어떤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다소 강연하는 느낌으로 진행되는 데, 괜찮을까요? (웃음)

박서현 아주 좋습니다 선생님. (웃음) 자원과 공간을 매개물로 한 자치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로서 커먼즈를 이해하고, 근대국가와 시장경제가 사회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대안적 사회영역을 커먼즈를 중심으로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치적이고 협력적인 사회적 관계로서의 커먼즈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공동체를 떠올리게 하는데요, 기후위기 같은 문제는 지구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합니다. 이러한 지구적 차원의 접근과 커먼즈는 어떻게 접목될 수 있을까요?

정영신 앞서 말씀드린 커먼즈의 구성원리는 인간의 구체적 활동들이 개입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커먼즈를 이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통적 커먼즈에 대한 연구들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활동이나 관계가 거시적 영역에서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는데요, 실은 이것이 제가 그동안 수행했던 커먼즈의 역사 등에 대한 연구의 결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

조선시대나 로마제국, 또 그 밖의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회의 질서나 구조를 규정하는, 오늘날의 언어로 말하면, 커먼즈와 관련한 일종의 근본적인 사회계약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의 결과였을텐데요, 예컨대 고려시대 말 호족들에 의한 자연 자원의 사취와 토지의 사점 확대로 인해 일반 백성, 민중의 삶의 조건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배층이 등장하며 조선으로 왕조 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성계가 ‘산림천택 여민공지’(山林川澤 與民共之)를 건국이념으로 설정한 것은 아래로부터의 민중들의 생계·생존의 요구를 왕조의 통치원리 속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라는 고민을 담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경국대전』의 「형전」의 규정으로 남은 것이고 로마법에서는 유스티아누스 법전에서 사물의 범주에 대한 구분 속에서 위와 같은 이념을 확인할 수 있으며 영국의 경우에는 숲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보장하는 「산림헌장」에서 그 이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민중의 생계·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에 민중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리로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커먼즈의 법이라고 부르는데, 통치자의 의무나 사물의 범주로서 규정되고 있었던 것이죠. 개별 커먼즈들을 여러 문명과 시대에 걸쳐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커먼즈에 기반을 둔 사회생태체계가 일반화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을 가능케 했던 거시적 조건으로서 국가나 세계 제국 수준에서 커먼즈의 통치원리와 같은 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개별 커먼즈들을 구성하는 ‘우리의 것’의 원리는 근대법 속으로 제도화됩니다만, ‘모두의 것’을 보장했던 통치원리와 커먼즈의 법은 해체되고 자본주의적인 사적 소유의 원리와 근대법에 의해 대체되었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전환을 고민할 때 바로 이 부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커먼즈의 법이라든가 통치원리를 근대사회로부터의 전환을 고민할 때 어떻게 근본적인 사회계약, 새로운 질서원리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낼 것이냐가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 쓴 논문 「이탈리아의 민법개정운동과 커먼즈 규약 그리고 커먼즈의 정치」(『ECO』, 26(1), 2022)는 이탈리아 도시정부들이 채택한 커먼즈 규약을 다룬 것입니다. 국민국가 수준은 아니지만 도시정부 수준에서 시민과 정부가 어떤 계약을 맺고 공공재나 혹은 사적 재화라도 시민의 자유로운 발전이나 인권 실현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커먼즈로서 시민들이 도시정부와 계약을 맺어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약을 다룬 것입니다. 그것은 커먼즈의 원리를 도시정부의 구성 원리 속에 삽입했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커먼즈의 통치원리를 어떻게 국민국가나 혹은 그보다 더 큰 차원에서 제도화할 것이냐가 아주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래로부터 자치와 협력에 기반을 둔 시민들의 활동을 어떻게 장려하고 보장할 것이냐라는 고민과 위로부터 새로운 통치원리나 사회구성의 원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이냐라는 고민이 서로 만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러한 정치적 과정을 커먼즈의 정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자면, 지구의 대기나 지구생태계 자체를 모두의 것으로 규정하는 국제적인 권리선언과 국제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원리를 현실화할 수 있는 헌법의 개정과 정치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유정 아래로부터 미시적 실천이었던 커머즈 운동에 맹점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셔서 아래와 위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일까요?

정영신 네 맞습니다. 자치와 협력이라는 커먼즈의 원리는 말씀드렸듯이 국가와 자본의 권력을 상대화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는 하지만 자치와 협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치와 협력은 폐쇄적이거나 혹은 계급적으로 구획된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커먼즈에 비판적인 연구자들은 이런 점을 커먼즈론의 맹점으로 생각하고 비판을 합니다.

예를 들면 제주에 있는 마을목장, 마을어장을 쉽게 마을 커먼즈라고 하면서 전통적 커먼즈가  근대화된 형태라고 얘기하는데, 오늘날 이러한 것들은 마을 공동체의 자산, 마을이 소유권이나 전적인 권한을 가지는 어떤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도시의 공동체적 커먼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경향이 강화되면 사실 사적 소유물과 거의 다를 바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커먼즈인 한에서는 예컨대 제주의 마을목장이 근대화 이후 마을 공동체에 그 소유권이 주어지기는 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마을사람들의 자산으로만 존재했던 것도 아니고 또 제주의 자연 생태계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경계를 소유권을 중심으로 해서 그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을어장의 경우에도 지금은 국가가 그 소유권을 가지고 있고 어촌계에 관리권과 수익권을 주고 있기는 하지만 바다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여러 갈등(예컨대 스쿠버다이버와 어촌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갈등이나 분쟁은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라는 원리를 상실했거나 그러한 권리 주장과 부딪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치와 협력을 통해 ‘우리의 것’을 조직화화는 활동과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보장하는 원리를 각자의 조건과 맥락 속에서 조정해 낼 때, 커먼즈의 본래적 의미를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것에 대한 원리가 결여되면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원리만으로는, 즉 자치와 협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원리만으로는 폐쇄적이거나 배타적인 공동체의 것으로, 자기들의 어떤 사적 소유물로 여기게 되는 것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저는 모두를 향해서 열려 있다는 것을 커먼즈의 핵심 원리로 함께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제주에서 전통적 커먼즈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와 관련해서도 중요한 논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정 커먼즈의 미시적 활동의 맹점이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연집의 활동은 커먼즈의 미시적 활동에 포함되는 것일까요?

정영신 연집은 양 측면이 다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도 하고 연집의 재생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관계 맺기나 외부의 연구자금을 가져오는 활동이 필요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집의 활동과 재생산을 구성원의 품앗이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치적 측면도 크고 대학 안과 밖을 넘나들며 연구자들 사이의 협력적 학술활동을 강화해 나가려는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이런 활동을 연집이라는 틀 안에서만 하려는 게 아니라 경계를 열어놓고 학술활동의 본질이 무엇이며 지식공유의 가치는 무엇인지를 문제제기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집 활동이 미시적 측면에서 자기 재생산을 통해 커먼즈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활동과 함께 학술운동을 통해 지식공유와 같은 어떤 보편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서 계속해서 밖으로 열린 활동을 하려는 측면을 가지고 있어서, 양 측면, 즉 우리의 것으로서의 커먼즈의 활동과 모두의 것으로서의 커먼즈의 활동을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집의 새로운 학술운동과 커먼즈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말씀 하셨듯이 커먼즈는 연집 학술운동의 핵심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커먼즈가 오늘날 ‘학술운동’에서 어떤 의미를 가진다면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연구안전망 구축을 위한 연구자들의 상호부조 방안들에 초점을 맞춘 연집의 활동은 예컨대 1980년대 후반의 한국 학술운동과는 구분되는 오늘날의 학술운동의 성격을 보여주는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데요, 이전의 학술운동과 구분되는 연집 학술운동의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결국 학술, 연구는 본질적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사회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지식 생산자들이 지식을 어떻게 생산하고 생산된 지식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그 지식을 이후에 어떻게 이용하고자 하느냐가 학술운동에서는 근본적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커먼즈로서의 지식이라는 개념과 커먼즈로서 지식을 만들어내는 학술운동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학술운동의 핵심적 가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이 매년 여러 논문이나 저서 등을 써내는데요, 물론 자신의 이름을 붙여 그 생산자를 명기하지만 일단 생산되고 나면 그 이후에는 독자들 또는 시민들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보는데요, 논문을 출판할 때에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를 붙이는 식으로 지식을 커먼즈로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생산된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규칙을 통해 커먼즈로서 학술영역에 내놓고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식 생산자들이 자기가 생산한 지식을 어떻게 이해하며 지식을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지식을 어떻게 이용하기를 바라느냐와 관련하여 커먼즈는 중요한 가치 구현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학술운동에서도 커먼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연집 운동에는 전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학술운동의 영역과 새롭게 시작하는 학술운동의 영역이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을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운동과 연대하는 학술운동은 민교협을 비롯한 여러 학술단체들이 해온 운동인데요, 민중 속으로 들어가는 연구자라는 상에 맞춘 학술운동을 연집도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동시에 특히 신자유주의 이후의 연구자 집단의 분화와 비정규직 연구자들의 불안정성의 증대에 대응하는 학술운동 그리고 지식공유플랫폼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있는데 이러한 운동이 새로운 학술운동의 기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연집이 이 두 가지 운동을 함께 하고 있는데 후자 쪽에 좀더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연집 선생님들이 일상에서는 전자의 운동에 초점을 맞춰서 많은 활동들을 하고 계신데요 필요하고 중요한 활동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다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후자의 운동으로 연구자 복지법, 연구자 사회주택 사업을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는데 두 사업 모두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구체적 결실을 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업에서 일점돌파 형식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는 집중 투쟁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이는 사실 연집 역량의 한계라는 부분도 있는 듯합니다. 이런 사업들이 동력을 얻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대학 밖의 연구자 또는 비정규직 연구자들이 이를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고서 결합하는 것이 과제일텐데요. 사실 일정 수준 이상 결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한 가지 원인은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연구자라고 하더라도 자기의 연구 관심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고 또 박사과정, 박사수료, 그 다음 박사졸업 이후의 과정 및 여러 연구 프로젝트에 결합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위가 변하는 일련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이와 같은 연구자 지위의 유동성이 연구자들에게서 하나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애사 속에서 연구자들이 밟게 되는 다양한 단계들에 맞춰 연구자들을 어떻게 조직하며 이에 적합한 활동들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이냐가 어려운 문제이면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박사과정생이나 박사수료생을 대상으로 하는 ‘재잘재잘’이라는 프로그램을 최근 만들었는데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있구요. 얼마 전 제가 했던 ‘신박한 연구찐담’은 이제 막 박사학위를 받은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연구자들의 생애주기나 유동적 지위를 고려한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연구자들에게 말을 걸고 교류하면서 연집의 동력으로 만들어내는 고민을 좀더 세분화하여 진행하고 이런 프로그램들을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정 재잘재잘은 멈춘 게 아니라 1년에 3번 또는 4번을 하기로 해서 현재 준비 중에 있습니다.

정영신 네.

박서현 지식의 공유나 생산에 초점을 맞춘 활동들이 있고 이와 다소 결을 달리하여 연구자의 복지라든가 연구안전망 구축에 초점을 맞추는 활동들이 있는데 이를 전자의 운동과 후자의 운동으로 얘기한다면 연집에서 후자의 운동에 좀더 관심을 갖고서 활동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제가 말씀드린 전자의 운동, 후자의 운동은 이것이 아니고요. 민교협 활동을 비롯하여 1980년대부터 교수들이 중심이 되어 사회참여적 운동을 해왔던 전통과 2010년대 이후 새로운 학술운동을 모색하는 흐름이 연집에 같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요, 전자의 운동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 운동을 저는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단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하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집의 경우는 후자의 운동에 좀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연집 활동이 연구자 복지법이나 연구안전망을 만들어내는 데 막혀 있는 부분이 있는데 기존 연구자 단체들이 이런 문제들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거나 자신의 적극적 의제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서 이를 해결해야 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수혜자인 동시에 주체가 될 여러 단계들의 비정규직 연구자들, 불안정한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연집 활동의 동력으로 만들어내야 되는 과제가 있는데요, 제가 고민했던 돌파의 지점은 이 부분에 있었다는 말씀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박서현 말씀 감사합니다. 커먼즈 관련하여 마지막 물음이 될 것 같은데요 지식의 성격과 관련하여 우리가 생산한 지식이 각자의 이름을 달고 출판되기는 하지만 모두가 지식을 공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또 향후 지식생산의 기반이 되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식과 관련하여 이러한 생각이 일반적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식이 사적 소유의 대상이 아닌 커먼즈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몇몇 연구자들과 얘기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공유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커먼즈를 공부하면서 저는 커먼즈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즉 공동의 것을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제 삶에서 사물을 대할 때에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물론 우리는 사적 소유가 지배하고 있는 체계 안에서 살아왔고 그래서 어떤 연구자가 자신이 생산한 지식이 내 것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예를 들어 디비피아에서 각각의 연구자에게 저작권료를 주는 식으로 지식공유의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입장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커먼즈 연구가 세계관 같은 것에도 영향을 미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세계관이요? (웃음) 지식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가까운 질문인 것 같은데요. 현실적인 고민을 해보면 박서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가 쓴 논문이나 책에 대해 커먼즈가 아니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분명 많이 있지요. 그것은 지식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식이든지 모두가 만들어내는 지식 생태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지식은 모두의 것이라는 성격을 지닙니다.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동료 연구자들의 조언으로부터 결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덧붙여지죠. 그리고 현실에서는 이런 지식을 상품으로서 시장에 내놓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특히 연구자들이 하나의 논문이나 책을 저술할 때, 자신의 순수한 창작 부분은 얼마나 될까요? 이런 부분들을 고려하면서, 지식 생산에서 기여를 인정하는 것과 연구 지식의 본질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학의 현실을 생각하면 대학은 계속해서 신임교수나 연구자들에게 채찍질을 하여 대학의 자산으로서 지식을 생산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연구자들이 생산한 연구성과를 대학 서열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자기들의 자산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굉장히 강합니다. 저는 대학이 연구자들이 생산하는 지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가 대학혁신과 관련하여 핵심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학은 연구자들의 지식 생산에 그다지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연구자들이 생산한 지식을 자기들의 경쟁력이 되는 자산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대학들을 서열화하고 이를 통해 정부지원을 받아내는 식으로 지식을 전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말씀드렸듯이 지식이 모두의 것으로서의 성격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한편에서는 지식인·연구자 운동을 통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지식공유플랫폼을 비롯한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연집은 지식공유 활동과 관련하여 지식공유플랫폼을 만들어내는 등 지식공유 운동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해 왔습니다. 이런 활동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저는 연집에서 해야 하지만 아직 못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은 삶의 현장에서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활동들을 이미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민 연구자나 연구 활동가로 불릴 수 있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사회운동 현장들에서는 연구 활동가가 되어 어떤 지식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생산하는 시민들이 있고, 운동단체에도 그런 분들이 있지요. 현재 연집은 전문 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시민 연구자나 연구 활동가들이 생산하는 지식 혹은 이들의 연구활동과 어떻게 결합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집 선생님들 가운데에는 개별적으로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신데요. 조직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고 개인적 헌신과 같은 식으로 개별화되어 있는 측면이 큰 것 같습니다. 이를 연집 활동으로 어떻게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연구자의 집이 ‘전문’ 연구자의 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연집의 정체성이나 근본적 가치, ‘연구자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과도 관련된 문제이기도 합니다.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안보-발전 복합체의 해체와 대안적 사회구성 원리의 발견이라는 과제

박서현 고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웃음) 선생님께서는 커먼즈에 대한 연구 이외에도 동아시아의 분단체제, 안보분업구조, 오키나와의 기지화·군사화 등에 대한 연구를 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러한 연구를 해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커먼즈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 선생님의 학술적 연구·관심이 연집에서의 활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정영신 제 명함에 동아시아·평화·커먼즈·사회운동 연구자라고 적었는데요 사실 연집에서의 활동은 주로 커먼즈 논의에 기반을 두고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박사학위 논문을 동아시아 군사기지와 평화운동을 주제로 썼는데요 평화나 군사, 안보 문제는 제 개인적 관심사로서 여전히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지구적 규모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동아시아 현실을 살펴보면 전쟁이나 지정학, 국가폭력, 안보·평화 문제가 사회 변동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 문제가 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술적으로 계속해서 이 부분을 연구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안보와 발전이라는 두 가지 사회구성의 원리 혹은 사회변동의 원리가 어떻게 결합되어 왔는지, 어떤 복합체로서 존재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해명하고 비판하는 작업, 그리고 이런 안보-발전 복합체를 해체하고 대안적인 사회구성의 원리를 어떻게 발견하느냐가 제 연구 관심에 있어 핵심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석박사 과정부터 가지고 있었고 연구를 하면서 오키나와나 금문도, 제주도의 현장을 방문도 하고 이 현장에서 때로는 살기도 하면서 활동가들, 시민들, 주민들과 만나 상당히 많은 도움을 얻으면서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 연구활동이 이분들과 맺었던 관계의 후속작업으로서 제가 경험한 세계에 존재했던 여러 모순이나 문제를 연구자의 언어로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일방적으로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돌려주어야 하는지, 어떤 호혜적 관계를 맺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주제들은 연집 활동에서는 거의 하지 못했는데요, 연집 구성원 중 김민환 선생님처럼 유사한 고민을 하는 연구자들과 다른 장에서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주제들과 관련해서 연집에서도 기획을 하여 활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민환 선생님이 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러면 거기서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웃음)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학계에서 담당해야 하는 역할

박서현 네 말씀 감사합니다. 아까도 잠깐 말씀해 주셨지만 선생님께서는 근래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의 연구를 소개하는 프로젝트 ‘신박한 연구찐담’을 기획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및 선생님께서 본 프로젝트를 기획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신박한 연구찐담’을 제목으로 계속 사용할지는 모르겠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최근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을 학술 공동체에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전후의 시기가 문제의식이 가장 날카롭기도 하고 연구성과도 많이 나오는 시기여서 새로운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배우는 자리를 마련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박배균 선생님이 연집에서 정규직 교수들이 하는 일이 너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제게는 울림이 좀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처음 구상한 프로그램은 최근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들을 학술 공동체에 소개하는 것이 아니었는데요, 대학 안에 있는 연구자들이 정년퇴임을 할 때 은퇴식 등을 하는데, 대학 밖에서 오랜 시간 연구한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그간의 연구활동을 축하해주거나 연구성과를 평가해 주는 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학 밖의 연구자들에게 이러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물론 꼭 은퇴식이라기보다 대학 밖에서 긴 시간 동안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선생님들의 연구업적 등을 소개하고 평가하며 연대하는 프로그램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저도 거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첫 번째로 섭외하려던 분이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정태인 선생님이었는데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정태인 선생님을 시작으로 이후 여러 선생님을 섭외하여 지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시작하지 못하게 되면서 현재로서는 이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초기 제안과 함께 구상했던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박사 소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근래 박사학위를 받는 연구자들을 학술 공동체에서 소개하면서 그분들의 연구성과를 공유하며 배우는 것으로 프로그램으로, 7월 8일 첫 모임을 했습니다.

사실 박사학위를 받은 새로운 연구자들을 연구 공동체에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있기는 합니다. 주로는 세분화된 분과 학회에서 소개가 이루어지는데요, 저는 이 틀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좀더 넓은 틀에서 예컨대 사회과학 분야,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같은 식의 폭넓은 틀에서 새로운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이들의 연구성과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분화된 분과 학문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분과 학문 선생님들과도 협업 등이 이루어질 수 있는 어떤 출발점을 연집에서 제공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예컨대 저는 사회학을 하지만 사회학 이외에도 정치학이나 역사학이나 인류학 등 분과 학문 선생님들을 폭넓게 만나면서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박사학위 논문 이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와 관련하여, 여러 분과 학문 선생님들이 함께 고민하고 조언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신박한 연구찐담이 출발했습니다. 잘 됐으면 좋겠는데요, 연집에 있는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여러 분과 학문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연집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좋은 연구자들을 알려주시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서현 연집에서 현재 실천하고 있는 여러 활동들 이외에 추가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활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연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학계에서 담당해야하는 역할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핵심적인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연집이 진짜 연구자들의 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연집은 교수노조도 아니고 민교협도 아닌 그냥 연구자의 집인데요, 지금은 교수·연구자들,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강사 선생님들이 많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연구자의 폭을 넓혀가는 활동일 수 있는 연구자 복지법이나 연구자 사회주택 등의 사업이 잘 진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전문 연구자 생애주기의 여러 단계들에 부합하는 사업을 통해서 연구자들이 연집에서 교류하고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전문 연구자만이 아닌 비전문 연구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 연구자들, 연구 활동가들은 특정 분야의 경우에는 대학에 있는 연구자들보다 전문지식이 더 많은 분들도 있으신데요 이러한 비전문 연구자들과의 관계맺기 그리고 생애주기의 여러 단계들에 있는 연구자들과의 관계맺기와 같은 활동들을 통해 연집의 저변을 확대하고 동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청 앞 천막촌 활동

박서현 마지막 질문을 드리기 전에 인터뷰어로 참석하신 이소영 선생님께서도 정영신 선생님께 궁금하신 사항을 질문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웃음)

이소영 네 (웃음) 언젠가 정영신 선생님을 뵈면 여쭤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는데요, 인터뷰의 성격에 맞지 않는 사적 질문 같아 조심스럽지만 나중에 편집되더라도 일단 용기 내어볼게요. 사실 제주대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정영신 선생님의 존재는 (저희 둘이 공동으로 알고 있을 선생님들께)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만날 기회가 생기면 인사드려야지 생각했는데 공교롭게 계기가 매번 어긋났었어요. 그러다 2018년 늦가을 무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선생님께서 제주도청 앞 천막촌에 합류하셨다는 소식에 닿았습니다. 일회성 지지 방문 형태겠지 막연히 생각했는데 사람들 말이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거기서 먹고 자며 생활하신다는 거예요. 그때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천막농성이나 노상투쟁, 이런 단어들은 스물한두살 무렵 철거민 운동 언저리를 서성였던 저한테도 사실 낯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대학원 진학을 택했던 저를 포함한 몇몇은 여전히 이른바 진보의 입장에서, 정의로운 자의 위치에 스스로를 세워둔 채 글 쓰고 발언하면서도 사적 자리에서는 ‘교수야말로 3D업종이다,’ ‘교직원들이 갑이다,’ ‘요즘은 학생들의 입에 지식을 떠먹여주어야 한다’ 식의 투정을 주고받으며 부지불식간에 점차 안정된 내부로 향하고 있었는데요. 선생님은 바로 그 지점에서 내부 아닌 바깥으로, 천막으로 향하셨고 노숙투쟁을 하셨습니다. ‘길 위의 연구자’는 수사적 표현이 아닌 실제가 되었고요.

그 시점 이후로 저는 동료들끼리 호봉 갖고 불평하거나 ‘교수야말로 3D업종’ 식의 내부자적 투정을 주고받을 때 해실해실 웃으며 맞장구치거나 말을 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천막으로 향할 용기까지는 없다면,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순응적인 사람이고, 학교나 학회에서 또래 주니어급에게 주어진 일들을 불평 없이 수행하며 지내왔지만,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성실하게 공부하고 가르치는 ‘모든’ 연구자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현 상황에서 그 조건을 운 좋게 가진 제가 진 빚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민교협 활동도 하게 되었고요. 연집에도 미소하게나마 일손을 보태게 된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선생님의 천막 행은 지금 제가 이 줌 인터뷰에 들어와 있게 해준 어떤 시작점이 되었는데요 선생님께서 그때 어떠한 마음으로, 또 어떠한 계기로 제주도청 앞 천막촌으로 향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사실 제주 제2공항 문제는 제주대 SSK 연구단의 연구원으로 있을 때에도 그와 연관된 연구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연구단에서 제주제2공항반대범도민행동과 실제로 공동사업을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연구원 생활로 소모되는 느낌도 커서 연구활동을 조금 쉬고 싶은 상황도 있었고, 대학에서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계와 맥락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강정해군기지반대운동이나 비자림로확장공사반대운동, 제주제2공항건설반대운동을 전개해온 분들과 여러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분들이 제주도청 앞에 천막촌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천막촌이 실제로 들어서기 전에 접했습니다. 2018년 당시 비자림로에서 활동가들이 ‘비자림로 시민 문화제’를 열었습니다. 그 문화제에 지역주민들이 와서 트럭을 세워 놓고 매연을 뿜으면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험악한 말들도 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하게 전개되었습니다. 활동가들이 많이 울기도 하고 힘들어할 때였습니다. 그 직후 문화제를 했던 활동가들과 시민들이 모여 얘기를 하면서 여기 왜 연구자는 없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다음날 한 친구가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후 활동가이자 친구들이 제주도청 앞 천막촌을 만들 것이라고 하면서 거기에 연구자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제게 했었고, 제주대에서 함께 연구하던 후배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러면 우리도 천막을 치자고 하여 제주도청 앞에 천막을 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천막을 친 것은 “연구자들은 왜 이 자리에 없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들이 있었다는 점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막을 치는 것을 저와 후배들은 연구자들이 사회운동 현장에 가서 연대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장훈교 선생님, 윤여일 선생님, 저 이렇게 3명이서 시작하고 그 다음 박서현 선생님이 합류하여 4명이서 함께 했는데 천막에서 연구와 활동을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천막을 처음에는 연구자 천막으로 불렀다가 연구자 공방으로 불렀고 이후 연구하는 연구 공방으로 불렀는데요, 당시 우리가 하는 활동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계속 조금씩 바뀌면서 고민을 이어갔던 것 같습니다. 어려웠던 부분은 현장에서의 연구활동, 현장이 필요로 하는 지식은 정세적으로 요구되는 지식, 단기간에 생산될 수 있어야 하는 지식인 경우가 많은데 연구자들은 호흡이 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료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다소 불일치되면서 생겨나는 어려움과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4명의 연구자가 잘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조금씩 달랐는데, 4명의 호흡이 좋았던 것이 연구자 천막, 연구자 공방이 천막촌 안에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저는 회의에 참석하거나 활동가들, 시민들과 제주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들을 했었고 박서현 선생님과도 ‘열 개의 문’이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했었습니다. 윤여일 선생님의 경우는 천막촌에 있는 분들과 대화하면서 그분들의 고민을 함께 풀어내고 이를 운동의 동력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장훈교 선생님은 여러 분야에 걸쳐 우물을 파는 다방면에 걸친 연구자여서 이런 연구관심들을 모아 천막촌에서 발표하는 자리들을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역할들을 하면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함께 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연구자로서 해야 될 역할을 다 하고 있나라는 한계를 느낄 수 있었지만 동시에 함께 활동하면서 연구자들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그곳에서 하고 있다는 부분적 만족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못 다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술 한 잔 하면서 하시죠. (웃음)

박서현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은데요, 연구자 공방에서는 두 종류의 음료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차게바라’입니다. 차게바라가 1번. 그리고 2번이 있습니다. 차가 있으니까 커피가 있어야 되겠죠. 2번 ‘혁명커피’. 차게바라와 혁명커피가 있었는데요, 60년대에 투쟁하는 것도 아니고 혁명커피는 진짜 안 된다고 생각하여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커피레프트’로. 그래서 차게바라와 커피레프트, 두 종류의 음료를 마실 수 있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갑자기 추억이 생각나네요. (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 향후 학문적 과제를 포함하여 학술적 실천의 과제로서 무엇을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영신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안보, 평화의 문제와 개발, 발전의 문제들이 어떻게 서로 엮이면서 사회를 조직해 나가느냐를 연구하고 해명하며 비판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 용어로는 안보-발전 복합체를 어떻게 해명하고 비판할 것이냐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데요 제 과거 연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저는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연구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커먼즈를 연구하면서 논문 등에서 얘기한 커먼즈의 정치를 더 발전시켜 현재의 기후위기나 고령화, 불평등 같은 여러 사회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체제전환을 이루기 위한 전환의 정치를 촉진하는 데 커먼즈의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작업을 하면서 향후 한 10년 정도를 보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체제전환의 문제가 인문사회과학 전 분야와 일부 자연과학 분야가 함께 고민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씀드린 안보-발전 복합체를 해명하고 비판하는 작업을 이 문제에 녹여내는 작업들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다음 학술적 실천은 향후 연집 활동에 대한 제안과 관련하여 말씀드린 것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박서현 최장 시간의 인뷰였던 것 같은데요 장시간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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