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커먼즈합정 개소 특강 ‘대학의 역사, 대학의 미래’ 강의녹취

활동소식

R커먼즈합정 개소 특강 대학의 역사, 대학의 미래

 

특강 일자: 2022년 12월 21일 수요일

특강 장소: R커먼즈합정

강연자: 최갑수 (연구자의 집 이사장, 서울대 서양사학과 명예교수)

 

 

 

머리말

안녕하십니까. 지식공유 연구자의 집에서 마련한 R커먼즈합정 개소 특강 ‘대학의 역사, 대학의 미래’의 강연을 맡은 최갑수입니다. 먼저 제 경험을 소개하는 것에서부터 오늘 특강을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법인화 반대 운동을 했고, 교수노조 준비위원장을 했습니다. 1999년도에 민교협 의장을 하면서 교수노조 추진단을 만들었습니다. 2001년도 당시 정부는 교수노조가 불법이라고 했는데요, 우리는 비법이지만 비헌법적이지는 않다는 점에서 헌법노조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교수노조를 만들었고 결국 최근 합법화됐습니다.

교수노조를 만들 때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다. 1995년도의 유명한 5.31 교육개혁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사에서 중요한 사건일 것입니다. 당시 김영삼 정권에서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책임자가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였고, 실무 총책임을 경제 법학을 전공한 박세일 교수가 맡았으며 교육개혁안 작성의 실무를 맡은 사람이 현 교육부 장관 이주호였습니다. 이주호 장관은 당시 국제경제연구원의 연구원이었습니다.

5.31 교육개혁을 통해 우리나라 고등교육 정책이 바뀌었습니다. 이후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정책은 그대로 유지됐습니다. 당시 5.31 교육개혁안을 검토하면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대학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어서 이를 해석하기 위해 여러 책을 봤습니다. 개혁안에는 국립대학 법인화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다음 대학 설립 준칙주의라는 것이 있었고, 학생을 소비자로 섬겨야 한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운영·대학 설립의 자율화 같은 자율화라는 말이 많이 쓰였습니다. 이후에 이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하게 되었지요. 당시에는 왜 이런 일을 시도하는지, 이게 어디서 도래했는지 등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시기부터 일어난 대학의 변화가 과연 중세 대학, 근대 대학이라고 제가 이름을 붙이는 대학 모델에 버금가는 정도의 시대적 위상을 갖는 대학상인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2. 전통 문명과 대학 그리고 중세 대학

문명은 인류사의 사치품입니다. 문명이 시작되면서 국가가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가부장제가 생겼습니다. 문명의 탄생은 인류가 한 단계 올라서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자유롭고 생산자들은 모두 예속 노동을 하게 됐습니다. 최초의 정착 사회 문명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빠른 이집트 같은 곳에서는 새로운 문명이라는 이 현상이 지금부터 5,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반도에서는 대략 BC 5세기 정도이니 약 2,500년 전입니다. 아시다시피 청동기 문명이 다름 아닌 이 초기 문명입니다.

그런데 초기 문명은 지배층의 공멸 내지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충돌로 모두 무너져 내립니다. 이를 확인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층 분석을 하면 어느 시기부터 문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거의 천년 가까이 문자가 안 나옵니다. 유물은 발견되는데 문자가 안 나옵니다. 그래서 이를 암흑시대라고 합니다. 인도, 메소포타미아 등 초기 문명이 모두 무너집니다. 이후 인류가 철기 문명을 만들어 내고 생산력이 확대되면서 5천 년에 가까운 실패의 경험, 정착 생활을 시작한 것에서부터 따지면 거의 1만 년을 쌓아온 토대 위에서 결국 문명의 균형점을 찾아냅니다. 지배층의 착취와 피지배층의 사회적 재생산이 공존할 수 있는 어떤 선을 찾아낸 것입니다. 물론 굉장히 취약합니다. 기근이 들면 인구의 최소 10%가 죽어 나가곤 했지만 그럼에도 이 선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렇게 된 시기가 우리가 말하는 고등 문명, 고등 종교가 탄생한 때이고 이때 대학도 탄생합니다. 이 시기가 BC 9세기부터 2세기, 칼 야스퍼스가 ‘주축시대’라고 말했던 그 시기입니다. 예속 노동에 입각해 있더라도 인류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치자들이 보편주의를 강조하기 시작하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보편 종교가 나오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철저히 불평등한 사회지만 신 앞에서는 모두 다 동등한 사회라고 하는 인식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최초의 보편주의입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대학이 탄생합니다. 대학의 존재 형태는 문명마다 다르지만, 대학은 각 문명의 보편성을 떠받치는 지주였습니다. 중국 문명·인도 문명 등 수많은 문명에서 대학은 곧 문명적 기구였습니다.

문명 수준에 달하는 기구가 무엇이 있을까요? 국가는 문명의 차원으로 뛰어오를 때 제국이 됩니다. 정치적 역량을 축적하여 제국이 되는데요, 제국과 고등 종교가 문명의 거대한 두 축입니다. 양자를 연결해 주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대학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명은 대학을 가지며 대학은 적어도 그 문명 안에서는 보편 지식을 추구했습니다. 인도도 마찬가지이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전통 문명이 가지는 보편성의 수준을 굳이 생각해보면 인도가 최고일 것입니다. 브라만이 대학을 제도화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신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학 신분이 지배층을 이룬 유일한 경우입니다.

그리고 이제 위대한 농업 문명이 시작됩니다. 농업 문명의 역사가 2천 년 정도 됩니다. 유럽이 근대 세계를 만들어 낼 때까지 지속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문명이 사실상 지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농업 문명 시대에는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가 모로코에서 만주까지 이어지는 초원 지대·사막이었습니다. 이를 육지의 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농업 문명 시대에는 이 통로를 장악하는 자가 유라시아를 장악했습니다. 이후 대포 등이 나오면서 유목민이 정착민에게 군사적으로 우위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 1700년경입니다. 그러니까 BC 800년부터 AD 1700년까지 2500년 동안은 유목민이 정착민에 대해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유목민을 정면으로 맞부딪힌 쪽에서부터 국가 형성이 빨랐습니다. 유럽은 국가 형성이 늦습니다. 동남아시아도 늦었습니다. 중국은 굉장히 빨랐고 메소포타미아도 빨랐습니다. 초원 지대와 접해있기 때문입니다. 유목민들의 습격을 받게 되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정치적 질서가 이룩되고 이 토대 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의 구조가 만들어지게 되고 이 구조 속에서 제국들이 형성되게 되며 제국들이 고등 종교와 결합하면서 일관된 틀을 갖추면서 어떤 문명적 생태계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전 지구가 이와 같은 식으로 편성되었습니다. 1억이 넘는 최초의 정치적 단위를 만들어 낸 것은 송나라였습니다. 주자학은 1억이 넘는 인구와 엄청난 물질적 자산 토대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토대가 전통 문명의 가장 합리적인 사상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후 유럽이 바다로 진출하게 되면서 결국 문명의 소통로가 바다가 되었습니다. 유럽이 바다를 장악하면서 이제 글로벌 헤게모니를 가지게 됩니다. 유럽이 근대 세계를 이룩한 비결의 핵심은 자유 노동의 원리입니다. 전통 문명은 제국을, 고등 종교를, 또 위대한 학문을 만들어 냈지만,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계급 사회 더 정확히 말하면 신분 사회였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달랐습니다. 생산자들은 모두 예속되어 있었으며 생산력이 높을 수 없었습니다. 생산자들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낸 것은 유럽인들이 이루어낸 위대한 업적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가가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 애덤 스미스 등의 사람들이 탐구했던 주제입니다. 자유 노동이 생겨나고 자유인이 나타나며 이 토대 위에서 근대 사회, 근대 문명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토대 위에서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그래서 이제 1800년 전후부터는 유럽이 명백히 비유럽 세계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750년부터 유럽인들은 중국, 당시 청나라보다 앞섰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유럽이 만들어 낸 또 다른 것으로 복수의 국민 국가를 기본 단위로 하는 국제정치 질서가 있습니다. 이른바 ‘국가간 체제’(inter-state system)라는 것입니다. 전통 문명의 정치적 축적은 통상 문명과 정치적 단위를 일치시키는 ‘제국적 경로’가 일반적인데, 유럽은 특유하게 보편 기독교의 토대 위에서 결국 꽤 많은 수의 영토 국가들이 상호 경쟁하면서 공존하는 국제 질서를 구조화하기에 이릅니다. 돌이켜 볼 때, 그 기독교 계서제가 일종의 제국 구실을 했던 셈입니다. 유럽이 19세기 마지막 3분기에 전 지구를 장악하게 되면서, 그것이 확산하여 세계질서의 기본 틀이 됩니다. 유럽의 국제법이 전 세계로 퍼지고 유럽의 국가 모델이 수출됩니다. 유럽은 당장에 제국주의를 강화하지만, 유럽처럼 되려면 모든 사람이 자유로우면서 노동하는 근대 사회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빚어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체제하에서 생산력과 사회의 역동성은 엄청났습니다. 이제 유럽을 안 닮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유럽처럼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국가도 있어야 하고 대학도 있어야 하고 학술원이 있어야 하고 극장이 있어야 하고 전기가 들어와야 하고 박물관이 있어야 하고 국가의 기본적 지표인 시민권 같은 것이 모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문의 성격 역시 크게 바뀌게 됩니다.

대학에 관한 모든 상징체계는 중세 유럽에서 온 것입니다. 16~18세기 유럽에서 대학은 침체했고, 대학 밖에서 모든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르네상스·과학혁명·계몽 사상 등은 모두 대학 밖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대학의 기능이 있었습니다. 학위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대학을 중세 대학이라고 부릅니다. 1800년 이전까지는 다 중세 대학입니다. 기본적으로 자격증을 주는 것이지요. 지식의 전수 방식도 다릅니다. 유럽의 경우에는 교양 학과가 있고 그 위에 세 개의 전문학부, 신학·법학·의학이 있었습니다. 물론 격이 달랐습니다. 신학이 제일 위고 의학이 제일 아래였습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 측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이 기본적으로 통합 학문이자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었다는 점입니다.

 

3. 근대 대학

그런데 1800년 전후해서 유럽이 ‘근대성’을 빚어냅니다. 산업 혁명과 정치 혁명을 처음으로 이룩해낸 것은 영국과 프랑스였습니다. 그런데 이 둘만으로 유럽의 근대성을 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근대성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 바로 독일인들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보다 독일이 상대적으로 뒤졌기 때문에 독일인은 영국과 프랑스를 부러워했습니다. 프랑스로부터 19세기 전반기까지 엄청나게 얻어맞았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독일이 이제 거꾸로 반격하게 됩니다. 사실 독일 지역은 중세부터 인구가 가장 많고 사회문화적으로 부강함에도 정치적으로 분열하여, 유럽적 차원에서 불안정의 핵심 지역이 됐고, 우리는 이를 ‘독일 문제’라고 합니다. 오늘날 유럽이 안정되었다고 할 때, 이는 독일이 주도권을 구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상이지요. 아무튼, 당시 상대적으로 후진적이었던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룩한 것을 유심히 보고 배우려고 했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대 학문, 근대 대학을 만들어 낸 구체적 계기는 나폴레옹한테 프로이센이 패배하고 나서 1810년에 프로이센 왕이 리가로 피신해 있었을 때 이른바 베를린대학을 만든 사건입니다. 근대 대학의 이념은 이때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고 교수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인데요, 이것이 대학이 가진 연구 능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끌어내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프로이센은 자유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오히려 전제 국가였습니다. 하필 그때 궁정이나 대신들이 모두 피신해 있었기 때문에 베를린대학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여하튼 국왕의 재가를 받아서 1810년 베를린대학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대학의 조직 형태는 19세기 중반에 와서 만들어집니다. 1840년대에 근대 대학이 등장한 것입니다. ‘연구 대학’(research university)이라고 하는, 교육과 연구를 대학 내에서 결합한 근대 대학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후 분과학문 체제가 생겨납니다.

근대 사회, 근대 국가, 근대 대학이 등장한 이후 인문학의 정체성이 바뀌게 됩니다. 과거에는 기본적으로 ‘치자의 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국민적 정체성을 보듬어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영국에서는 이를 영문학이 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문학이지요. 프랑스에서는 역사학이 하고 독일에서는 철학이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마도 해방 이전에는 이 역할을 국어학과 국사학이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회과학이 처음 탄생합니다. 프랑스혁명으로 변화가 정상상태가 됐습니다. 혁명 때문에 사회가 근본적으로 재편될 판이어서 지배층으로 보자면 이 변화를 어떻게 통제해내느냐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변화가 있었지만, 예컨대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는 일종의 계절적 변화에 불과하여 결코 진정한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세계는 정치적으로 혁명이 터져 나올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인구나 생산능력이 절대적으로 증가하면서 엄청난 역동성과 심지어는 휘발성 있는 유동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정상상태가 된 새로운 변화를 통제하기 위해, ‘운동’, 이데올로기, 근대 대학이, 특히 사회과학이 탄생합니다. 사회과학이 오늘날과 유사한 분과학문체제로 편성된 것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입니다만, 이미 사회과학의 이념은 1830년대, 더 올라가면 프랑스혁명 말엽의 이른바 ‘이데올로그들’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과학이 대학 실험실 내로 들어오게 됩니다. 리비히(Justus von Liebig)가 1843년에 최초로 화학 연구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독일 대학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독일 대학들이 성가를 높였습니다. 요즈음은 미국에 밀리기 시작했지만 1945년 이전에는 독일인들이 노벨상을 휩쓸었습니다. 독일 아카데미즘에서 사회과학을 대표하는 인물이 막스 베버이지요. 누나가 미국에 있을 때 베버가 미국에 가서 미국 대학을 보고 놀랐습니다. 돈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러나 우습게 봤습니다. 독일 학문에 자신이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 사회과학의 아버지들(베버, 뒤르켐, 파레토, 스펜서 등)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함께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지요. 연구의 핵심이 무엇이겠습니까? 도서관과 실험실이고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학회와 학부가 있지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학문 세계의 기본장치들은 1880년대쯤 생겨났는데 독일 대학이 워낙 성과를 내다보니 영국과 프랑스가 그것을 본 따게 됩니다. 근대 대학은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보다 늦습니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소르본이 독일식 대학으로 바뀌는 것이 1880년대부터입니다. 그전에는 그저 지주나 부르주아 자제들의 사교클럽에 불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맥 쌓는 것이 주 기능이어서 중세 대학에 불과하였습니다. 미국과 일본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근대 대학의 이념을 받아들였습니다.

근대 대학은 엄청난 재정을 요구하기에 당시 제국주의 경쟁에서 승리한 국가에만 허용됐습니다. 문명의 사치품이기에 식민지에는 있을 수 없었고,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근대 대학에 터 잡은 근대 학문이 이제 인간·사회·자연의 모든 사상(事象)을 분류하고 호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통 문명이 각자 가지고 있던 보편 지식이 이제 지방 지식으로 전락하는 일종의 지식의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잘 보존됐다면 지금 인류가 훨씬 더 윤택했을 텐데요. 유럽인들이 만든 특수한 지식 체계로 인해 그런 학살이 벌어진 것입니다. 유럽 근대 학문이 ‘문명개화’라면 전통 지식의 홀로코스트는 그 밝음만큼이나 짙은 그림자였습니다.

 

4. 탈근대 대학

그다음 이제 근대 대학의 한 부류로서 미국 대학이 등장합니다. 미국 대학은 이미 1920년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특징은 기업형 연구 대학입니다. 출발부터가 유럽과는 다릅니다. 대학 구성원에게 자치권이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총장의 권한이 매우 크고 외부인사(laymen)가 이사회를 구성합니다. 일견 국가가 별 역할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 대학은 출발은 기본적으로 종파(congregational) 대학입니다. 하버드대학, 컬럼비아대학 등 모두 특정 종교와 관련이 있는 대학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동호인모임이나 스포츠클럽 같았습니다. 19세기 중엽까지 그랬는데, 1872년에 존스홉킨스대학이 독일 대학을 본받아 미국 최초 연구 대학으로 설립하면서 대학들이 근대 대학으로 바뀌게 됩니다. 1920년대에 대학 개혁이 진행되었고, 이에 교수들이 저항하고 그 와중에 노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노조는 만들지 안 돼 종신 재직권(tenure)과 교육권을 교수들이 확보하는 타협이 이루어지고, 그 결과물이고 지금도 중요한 조직인 미국 교수연합회(American Association of University Professors, AAUP)입니다. 곧 미국에서 교수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외부자가 대학을 지배하면서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포기하는 것이죠. 당시 교수들이 노조권을 확보했다면 근대 대학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대학의 사명이 무엇일까요? 문명에 대한 성찰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더 세게 말하면 비판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대학입니다. 미국 대학은 이런 성격이 약합니다. 그래서 미국 대학은 엄청난 성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합니다. 우리나라 대학보다도 미미합니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어쨌든 미국 대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글로벌 주도권 아래에서 엄청난 위세를 누리게 됩니다. 그 당시만 해도 미국 대학은 괜찮았습니다. 냉전 시대에 엄청난 돈이 있었고요, 미국 대학 지원금의 핵심은 국방부의 연구 지원금인데, 지금도 미국 국방비의 1/3이 연구개발(Research and Development, R&D) 비용입니다. 국방비 예산이 8천억 불할 때 2700억 불이 대학 연구비로 지원됐습니다. 1980년대 얘기입니다만, 미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등교육체계를 갖게 된 데는 그 방대한 물적 기반이 무엇보다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세계 대학의 롤 모델이 바뀌었습니다. 더는 독일 대학이 아닙니다. 정부, 대학, 산업계가 직접 연결되는 기업형 연구 대학인 미국 대학입니다. 미국 대학의 경우 이는 1920년대부터 있었던 현상이지만 그래도 1950-70년대에 대학의 공공성은 아카데미즘의 틀 내이긴 하지만 꽤 탄탄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레이건이 등장하면서부터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들어서고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예컨대 이전에는 좋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거나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이를 다 공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공적 자금이 들어간 것이기에 지식은 기본적으로 공공재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이 바뀌고 ‘지적 재산권’의 보호가 핵심적인 사안이 되면서, 우수한 논문을 썼는데도 일부 내용을 발표하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특허권을 주고 대학에 기업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1980년에 만들어진 베이-돌 법안(Bayh-Dole Act)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를 이주호 현 장관이 2003년에 우리나라 산학협력법에 도입했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독보적인 원천 기술 보유국입니다. 그간 미국은 제조업을 포기하고도 지적 재산권의 수입만으로도 무역 적자를 메꾸고 있습니다. 반도체 제작 기술은 모두 미국 것입니다. 장치 기술에서도 엄청난 돈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지요. 이 새로운 첨단 기술은 일부 영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것입니다.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는 이런 지난 4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종언을 뜻합니다. 결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지배 이데올로기이듯이, 미국 자본주의 축적방식이 그 핵심적인 일부인 대학과 고등교육의 성격을 규정했고, 그 결과 ‘탈근대 대학’이 등장했습니다.

미국 대학이 변화를 주도해 가면서 대학의 정체성에 심각한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수월성(excellence)이란 용어의 등장은 그 변화의 일단을 보여주며, 그것은 우리의 5.31 교육개혁안에도 자주 언급되니. 대학이 수월하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육비용이 많이 안 들어 가성비가 좋다는 얘기일까요? 대학의 주차시스템이 ‘엑셀런트하다’, 대학교수들이 ‘엑셀런트하다’라고 말할 때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수월성이란 사실상 내용이 없는 텅 빈 기호, 텅 빈 구호입니다. 이른바 개혁 편에서 조작하기에 편리한 모든 것에 해당합니다. 이제 교수평가, 대학 생활의 모든 측면의 계량화, 대학 순위, 비정규직 교수의 양산, 대학 구조조정, 대학 운영에의 경영 논리 도입, 학생들이 소비자이고 구매자라는 것, 학생이 교육이라는 상품의 구매자이고 학위는 투자 대상이며 효율과 생산성이 강조되는 것, 심지어 ‘인간 자본’ 등 미국 대학을 시발로 하여 세계의 모든 대학이 무한경쟁에 나섰습니다. 저는 지난 30~40년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대학을 ‘탈근대 대학’이라고 불렀습니다만, 이것이 앞서 얘기한 중세 대학, 근대 대학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대학 모델인지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현재 많은 연구자가 대학의 위기를 말하는데, 이는 대학에서 성찰적 능력이 사라져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일어난 것이고, 유럽은 우리와 시기적으로 비슷한 듯 합니다. 유럽 대학들도 이른바 순위에서 밀리니까 지금 정신이 없습니다. 특히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하면, 독일이나 프랑스에 100위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그간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나 프랑스의 학문 능력은 전체적으로 세계 5위 안에는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느 때부터인가 대학 순위에 독일이나 프랑스 대학을 안 넣기가 그래서 그런지 한, 두 곳을 집어넣곤 했지요. 그런데 잘 안 맞는 것입니다. 이제는 미국 대학 랭킹 기준에 맞춰 프랑스가 대학을 통합하여 2015년에 파리-사클레대학교(Université Paris-Saclay)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몰아주었지요. 이런 식의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5. 지금 우리의 대학은?

우리나라는 더 한심하게도 중세적 스타일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압축 근대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중세적 요소가 있습니다. 비리 사학이 중세적이지요. 근대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등교육에 대해 국가는 철저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 학생 1인에 대한 교육비가 초중등보다 대학이 적습니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아무리 적어도 초중등 학생 1인당 교육비보다 대학생 1인당 교육비가 많거든요. 인구는 급격히 주는데 초중등 예산은 유지되기에 이제 1인당 초중등 교육비는 우리나라가 가히 세계적입니다. 1만 5천 불이 넘을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대학은 지금 1만 불이 조금 넘는 수준일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대가 법인화되었고요, 지금 우리나라는 국립대학 체제를 해체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듭니다. 미국은 좀 다릅니다. 하버드대학의 경우 중앙 정부에서 들어가는 연구비가 전체 예산의 절반이 넘습니다. 그 비중이 서울대학보다 훨씬 많습니다. 미국의 국가 형성 과정이 독특하여서 국가가 유럽이나 우리나라와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뿐이지, 그 사치품을 사실 사회는 즉자적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학문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는 잘 아실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변화가 올 것입니다만 단기적으로는 유지될 것 같습니다. 이 와중에 우리가 대학의 공동체성, 대학의 성찰적 능력을 유지하고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 밖에서 대학에 따르는 능력과 역할을 만들어 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학은 엄청나게 돈을 많이 쓰는 곳입니다. 서울대만 해도 1년에 쓰는 돈이 2조가 좀 넘습니다. 하버드대학이 한 60억 불 쓰고 있고, 중국은 요즈음 엄청나게 투자해서 칭화대학이 지금 58억을 씁니다. 이런 수치는 아프리카의 어떤 대학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발전한 국가, 제1세계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지요. 이제 우리는 사회경제적 능력은 갖춘 것 같은데, 우리 지배층은 미국의 주도권을 추수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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