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커먼즈합정 개소식 2022. 12. 21]
대학의 역사, 오늘의 대학
최갑수 (연구자의집 이사장)
- 머리말
대학은 문명의 사치재(奢侈財)임. 하긴 문명이 인류의 사치재임을 고려한다면, 대학은 인류의 최고 사치품 가운데 하나임. 지배층의 수취와 피지배 생산자층의 사회적 재생산이라는 지속 가능한 문명생태계가 대학의 존립 기반임.
체계적 지식으로서 ‘대학’은 문자, 달력, 계급, 가부장제, 국가 등과 함께 탄생하나, 인류사의 ‘축(軸)의 시대’(기원전 9-2세기)에 고등종교 및 제국의 등장과 함께 즉물적 형태를 갖추었음.
- 전통 문명과 대학
‘위대한’ 농업 문명은 지식의 전수와 축적을 위한 일련의 교육체계를 빚어내고 그 최상층부에 고등교육기관이 자리함. 주 담지자이자 수요자는 고등종교와 국가(특히 제국)였음. 구체적으로 성직자와 관리 그리고 부수적으로 의사의 양성.
예속 노동에서 해방된 ‘치자(治者)의 학’
인간 및 문명의 정체성을 빚어내고 유지하고 함양하는 과업
이런 과정에서 삶과 죽음, 진·선·미, 자연과 우주에 관한 큰 물음과 답변이 다듬어져, 그것은 여전히 인간 정체성에 관한 마르지 않는 지혜로운 샘의 구실을 하고 있음. 요즘 식으로 말하면 넓은 의미의 인문학이 탄생한 것임. 신앙과 탐구의 결합과 긴장.
경전과 주석, 문명/보편어(산스크리트, 한자, 그리스어, 라틴어, 페르시아어, 아랍어 등)
보편적이지만 위계적이고 금지적인 지식체계
모든 전통 문명에는 각기 그 나름의 보편지식체계와 이를 위한 고등교육기관이 존재했지만, 유럽이 처음으로 전통 농업 문명의 제약을 돌파하여 ‘근대성’을 빚어냄으로써 자신에게 고유한 고등교육의 제도 및 전통을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일반적인 규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함.
- 중세 대학
이슬람 Madrasa의 영향.
유럽으로 볼 때, 시칠리아와 특히 이베리아반도의 중요성.
볼로냐 대학: 아랍문명과 접촉이 빈번했던 유럽의 지중해 지역에서 11세기 중엽부터 조합의 일환으로 universitas 등장
파리대학: 대학의 내부조직
‘교사와 학생의 공동체’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 동향단 (natio)
특권의 하나로서, 교황의 재판권에 직할하는 형태의 자치권
학문의 분류: 7 자유학예 (라틴어 문법, 논리, 수사학의 3학trivium, 기하, 산술, 천문, 음악의 4학quadrivium), 상부의 3학부 (신학, 법학, 의학)
학위 수여의 주체로서 학부, 구성원의 자기 충원, 지식 전수 및 습득에서 최고의 권위
학위: baccalaureus, licentia, magister(doctor)
물적 기반: 도시, 군주, 교회
기숙사(college)제
1500년경 기독교 유럽에 총 66개의 대학 (프랑스 17, 독일어권 16, 이탈리아 13, 에스파냐 11, 스코틀랜드 3, 잉글랜드 2, 덴마크, 폴란드, 포르투갈, 스웨덴 각기 1)
16-18세기 근대 초 유럽의 대학: 양적 확대와 지적 침체
교수단, 대학평의회, 학장/총장 선출
예수회
중등교육기관의 등장
과학혁명과 계몽사상의 진원지는 대학 밖의 아카데미, 또한 각종 고등직업전문학교들
1789년까지 총 142개 대학. 34개 대학이 독일어권에 위치.
독일 대학들의 상대적 활력: 1694년 Halle 대학, 1737년 Gōttingen 대학 설립.
- 근대 대학
이중혁명(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을 통한 산업문명의 등장
근대적 주체의 탄생: 개인(소유권, property)과 국가(주권, sovereignty). ‘헌법’은 기본권과 이의 보호를 위한 권력체의 형성이라는 이중구조를 가짐.
문명 전환의 의미: 인간 정체성의 변화, 소유권의 총체로서 사회(society)의 등장, 세계질서로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그 상부구조로서 국민국가를 기본단위로 하는 국가간체제(inter-state system), ‘사회문제’, 변화의 정상성 등.
개인과 국가의 연장으로서 기업과 대학.
대학, 기업, 국가는 자신의 형상에 따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근대세계의 세 주축기구. 근대 대학이 독일에서 빚어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 영국의 경제, 프랑스의 정치, 독일의 철학은 ‘근대성’의 세 가지 계기임.
흔히 대학이란 바로 이 ‘근대 대학’을 말함.
교육과 연구의 결합. 따라서 근대 대학은 곧 ‘연구대학’(research university)을 말함. 최초의 근대 대학이 베를린 대학(1810)이며,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학의 이념’을 제시했음: 철학부라는 전문학부, 국가의 지원과 대학(교수진)의 자치(상대적 자율성), 관료(Beamte)로서 교수진. 계몽사상의 담지자로서 독일 관념론, 보편 교양에 입각한 전문지식인. 국가에 봉사하면서도 비판지식의 생산을 기할 수 있는 지식공동체.
제도적 차원에서 근대 대학은 독일에서 19세기 중엽에 가시화함. 교육과 연구의 결합, 과학과 기술의 결합, 분과학문체제, 인문학의 새로운 출발 (국민정체성의 함양: 영국의 영문학, 프랑스의 역사학, 독일의 철학),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변화를 길들이기 위한 사회과학의 탄생, 자연과학을 대학 분과학문으로 편입함. 도서관과 실험실, 강의와 ‘세미나’(연습), 박물관, 전문학회, 학술지 등.
근대 대학의 전파와 수용: 1880-1920년에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 대학들은 독일 대학을 본보기로 하여 근대 대학으로 전화함. 다만 고등교육에서 프랑스형(Grandes Ecoles, 교육과 연구의 다른 결합 방식 등)은 잔존. 미국과 일본에서 근대 대학으로의 전환과 연구대학의 착근.
근대 대학은 엄청난 재정 투입을 요구했기에 기본적으로 국립이었음. 독일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그것은 부국강병을 위한 기획의 핵심적인 일부였고, 사실상 이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나라만이 그것을 보유할 수 있었음. 따라서 처음부터 그것은 ‘성공한’ 근대국가의 ‘자랑스러운’ 사치품이었음. 다만 예외적으로 국가형성과정 및 ‘사회’의 경제 여력이 남달랐던 미국에서는 사립과 공립의 근대 대학들이 생겨나고, 역설적으로 국립대학 설립의 시도가 결국 무산되기에 이름.
근대 대학의 제도적 착근은 ‘성공한’ 근대국가의 제국주의 시기와 맞물림. 일부 분과학문(지리학, 인류학, 동양학, 고고학 등)은 제국주의에 직접 봉사했고,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의 분과학문체제는 탄생부터 근대성/식민성의 이중구조를 원죄처럼 배태했음. 그것은 서구 문명의 ‘지방 지식’을 유일한 ‘보편지식’으로 끌어 올리고, 타 문명이 ‘전통지식’을 가차 없이 ‘지방 지식’으로 분류하고 격하했음. 근대 학문의 등장은 전통지식의 대규모 기각이라는 흑역사(‘전통지식’의 홀로코스트)이자, 구미세계의 식민지로 전락한 전통 문명의 후예들은 문명의 지식생태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음.
근대 대학의 세계적 확산과 현실적 제약:
시기 구분으로서 근대 대학을 냉전이 종식하고 ‘현실 사회주의’가 소멸하는 1990년까지 끌어내릴 수 있음. 이 시기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개괄할 수 있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근대 대학은 거의 전적으로 일부 특권 국가들의 전유물이었음. 식민지에 근대 대학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본국의 부산물이었음. 이들 나라마다 고등교육체계에 일정한 편차를 보이지만, 국가 주도가 일반적이었음.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에서는 베를린 대학의 ‘대학의 이념’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대학체제가 들어섬. 중층적인 대학체계(종파형, Liberal Arts College, 사립 명문의 연구대학, 주립대학, 대학원 대학 등), 외부인사(laymen)에 의한 대학지배구조, 총장의 중요성, 대학평가에 경영 논리의 적용, 노동지식인으로서의 교수, 기업 자유주의의 헤게모니, 특수한 형태의 학문 자유 등.1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의 중국: 반식민 상태지만 활기찬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사립대학의 병존 발전. 우리로 볼 때, 해방 이전에 근대지식의 통로는 일본, 중국, 기타 구미로의 해외 유학이었음.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크게 3차례에 걸친 탈식민과 독립의 물결. 하지만 ‘제3세계’의 대부분 국가는 자립경제를 일구지 못했듯이 여전히 지속가능한 고등교육체제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음. 구미세계의 연장인 나라들, 과거 제국주의의 ‘배꼽’이던 일부 도시국가들, 식민지 경험을 갖고 거의 유일하게 제1세계에 진입한 한국, 물적 기반을 갖춘 중국과 인도, 일부 동남아 국가 등에서 근대 대학이 나타날 수 있었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크게 보아 대학과 학문의 주도권이 서구(독일)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이동함. 특히 미국의 대학체제는 그 세계 지배의 전략적 고리 구실을 여전히 하고 있음. 1950-60년대 미국의 100여개 연구대학들은 각기 개도국 1년 예산에 맞먹는 재정을 교육과 연구에 투입하면서 뛰어난 성과를 만들어냄. 일견 미국 동부의 이른바 ‘아이비 사립대학들’이 정점을 이루면서도, 대학재정의 가장 중요한 몫은 소련과의 체제 경쟁에서 긴요한 국방비의 약 1/3에 해당하는 막대한 R&D 회계였음. 대학이 국가의 연장임을 미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음.
196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선진국에서 고등교육이 엘리트 교육에서 대중교육으로 전환하게 됨. 사실 각국에서 고등교육의 역사는 곧 국가형성의 그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정도에 따라 대중(여성)교육으로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음. 우리나라는 1980년에 들어서면서 전환이 일어났음.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고등교육은 여전히 대부분에게 ‘그림의 떡’임. 이것이 현실이 되려면, 각 가정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경제 여건을 이룰 수 있어야 함. 그리고 이는 여전히 오직 전면적인 토지개혁 여부에 달려 있음. 냉전기 ‘현실 사회주의’가 세계사에 공헌한 가장 중요한 측면의 하나가 바로 이것을 이른바 ‘자유 진영’에도 강제했던 데 있지 않나 함.
- 탈근대 대학2
1990년대에 미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대학’(neoliberal U)이 기업형 연구대학의 내재적 발전의 결과인지, 근대국가나 자본축적 방식의 성격 변화를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차원의 문명적 차원의 변화(민주주의의 후퇴/포스트 민주주의,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전지구적 남·북의 고착화, 백인 인종우월주의의 부활, 군사적 폭력의 지속과 확대, 기후 위기의 파국적 양상, 미·중 패권 경쟁 등)를 보여주는 것인지, 현재로선 판별하기 어려움. 하지만 그 역사적 계기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동한 ‘워싱턴 합의’(미 행정부 + IMF + 세계은행, 위기에 처한 국가나 체제 이행 중인 국가에 이른바 미국식 시장경제체제를 이식시키자는 모종의 합의)에 있음은 분명함, 또한 1980년의 Bayh-Dole Act [미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공연구소, 대학, 비영리연구소 등의 연구결과를 그 기관이 특허를 출원하고 기술사용료를 받을 수 있게 허가해 준다는 내용의 특허 및 상표에 관한 법(Patent and Trademark Act Amendments)의 개정안]3. 아울러 디지털혁명과 지식경제의 등장, 냉전의 해체로 대학 재정의 어려움, gig economy, 이른바 노동의 유연화와 ‘프레카리아트’ 등.
‘기업 대학’의 등장: ‘텅 빈’ 객관성의 기표로서 ‘수월성’(excellence), 대학/교수평가(h-index)와 대학 생활의 모든 측면의 계량화, 대학 순위제(university rankings), 교수진의 다양화/다층화, 비정규 교수의 양산, 대학 운영의 경영 논리, 대학구조조정, 직업교육의 소비자이자 구매자로서 학생, 상품으로서 교육과 지식, 투자로서의 학위, 효율과 생산성의 강조, IT와 가상공간, 대학공동체/캠퍼스의 무한한 확대/해체, 대학 재정의 시장 의존과 공적 해명 책임, 도서관의 변모 등.4)
인구 변화의 동태학과 학위의 경제적 가치의 장기적 하락 추세
대학의 존재 이유인 비판지식 생산의 위기, 지식인의 죽음?
- 지금 우리의 대학은?
압축 근대성의 양상: 중세적/ 근대적/ 탈근대적 대학상(像)의 중첩과 공존
전통적 교육관의 토대 위에 미국식의 종파 대학 이념, 일본을 통한 독일식의 근대 대학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 등의 교착
고등교육에서 국가 책임성의 몰각/방기, 천박한 족벌사학관, 서울대/인천대의 법인화, 어설픈 연구대학의 현실과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의 특수부문화, 특히 과학/기술 R&D에서 기초/응용/개발 연구의 불균형
단일 대학모델과 대학 서열의 고착, 분과학문체제의 경직성, 이른바 지방대학의 위기와 인문학 및 사회과학에서 일부 분야의 퇴출 위기
대학 공동체성의 약화와 학생운동의 사실상의 소멸. 사회운동과의 연계 문제.
비판학문, 비판지식인의 사실상의 부재.
돌파구는? 고등교육의 공공성. 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공공성의 추구로서 ‘커먼즈’가 대안일 수 있는가? 한반도의 지축을 뒤흔들 대전환의 계기는?
- 
클라이드 W. 바로우, 『대학과 자본주의 국가: 기업자유주의와 미국 고등교육의 개조 1894-1928』 (박거용 옮김, 문화과학사, 2011) [↩] 
- 빌 레딩스, 『폐허의 대학: 새로운 대학의 탄생은 가능한가』 (윤지관·김영희 역, 책과 함께, 2015); Special Section, “Global Higher Education in 2050: Building Universities for Sustainable Societies”, Critical Times, 5:1 (April 2022), pp. 77-216.[↩]
- 우리나라에서는 이주호 당시 의원이 기존의 「산업교육진흥법」(1963년 제정)을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로 개정·발의하여 2003년에 법제화에 이름. 개정의 핵심은 지적 재산권 취득의 주체로서 대학 안에 산학협력단을 설치하여 수익사업이 가능하게 하는 것임. 이리하여 우리 법체계에 ‘학교기업’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도입됨. 같은 법 제31조 5항. ‘학교기업’을 설명한 같은 법 제36조는 다음과 같다. “제36조 (학교기업) ① 산업교육기관은 학생 및 교원의 현장실습교육과 연구에 활용하고, 산업체 등으로의 기술이전 등을 촉진하기 위하여 학생·교원 등 학교구성원의 의견을 들어 특정의 학과 또는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직접 물품의 제조·가공·수선·판매, 용역의 제공 등을 행하는 부서(이하 “학교기업”이라 한다)를 둘 수 있다. 이 경우 그 사업 활동으로 인하여 교육에 지장을 주거나 학생 및 교직원에게 이용을 강제하여서는 아니된다. ② 학교기업의 수입은 산업교육기관의 회계(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사립학교법 제29조의 규정에 의한 교비회계를 말하며, 산학협력단을 둔 국·공립대학의 경우에는 산학협력단의 회계를 말한다)의 수입으로 하되, 학교기업별로 구분하여 계리하여야 한다. ③ 학교기업으로 운영할 수 있는 사업종목과 그 밖에 학교기업의 설치·운영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 고부응, 『대학의 기업화』 (한울, 2018); 제니퍼 워시번, 『대학주식회사』 (김주연 옮김, 후마니타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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