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신박한 연구찐담 후기 (박치현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활동소식

김일환 선생의 <한국 사립대학체제의 형성과 재단법인의 정치> 발표에 대한 후기

한국 사립대학의 63년 체제인가 : ‘학교법인헤게모니의 강고한 지속

 

(박치현/대구대 자유전공학부)

 

1. 지방 사립대학의 위기 해결이 어려운 이유

 

지방대학의 위기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갈수록 지방대학에는 입학생이 채워지지 못하고 있고, 재학생들도 수도권으로 이탈하고 있다. 지방 국공립 대학들마저 이러한 흐름에서 무풍지대가 아니다. 한국 고등교육의 8할은 이들 사립대학들이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지방대학들은 대부분 ‘사립’ 대학들이다.

얼마 전 탐사보도 <MBC 스트레이트>에서는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주로 운영되는 학교 시설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무단(?) 거주하는 –물론 학교 직원들은 다 알면서도 침묵한다. 이들이 인사권과 재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희대와 한양대 이사장의 실태가 폭로되었다. 학교재산을 자신의 ‘사유’ 재산처럼, 직원들의 급여를 자신의 돈으로 주는 것도 아니면서 직원들의 보좌를 받아가며 거주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바닥에 넘어지는 퍼포먼스까지 해가며 취재진의 취재도 막아준다. 아마도 사학재단 설립자 후손들처럼 취재가 어려운 베일 속 존재도 없을 것이다. 이들에게 사립대학은 ‘사유’대학이다. 이들은 심지어 학교 땅에 조상들의 묘자리도 깔아놓고 있다.1 필자가 오래 전 수년 간 강의했던 서울 한강변의 평지로만 이루어진 아담한 호수를 가진 대학도 호수 옆에 설립자의 묘가 커다랗게, 언뜻 보아도 명당자리 같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사립대학은 ‘봉건’ 왕국처럼 보인다.

이와 같은 사학재단의 사사성(私事性)과 봉건성은 ‘부패사학’이라는 이미지를 사회적으로 각인시킨다. 따라서 지방대 구조개혁에 가장 큰 허들이 된다. 지방 사립대학은 부패사학으로 표상되고, 여기에 국민세금을 쏟아 붓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에 부딪히고 만다. 지방대학의 위기 담론이 비등함에도 불구하고, 부패사학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지방대학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과 대응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2. 발표 내용과 필자의 의견 : 학교법인과 그 ‘영조물’로서의 대학

 

김일환 선생의 이번 발표는 한국의 대학에 대한 연구지만,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사립대학의 구조적 핵심인 ‘재단법인’(정확히 말하면 ‘학교법인’)에 관한 연구다. 대학을 우리는 교육과 연구기관으로 보통 이해한다. 하지만 사립대학 비중이 높은 한국 대학의 경우, 우리는 한국 대학 조직작동 논리의 특징인 ‘학교법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단법인’과 ‘학교법인’이라는 용어의 차이를 김일환 선생은 역사적으로 설명했다. 한국의 사립대학은 일제 식민지 시기부터 1963년 이전까지는 민법상의 ‘재단법인’ 형태로 운영되었다. 그러다가 1963년 사립학교법이 제정되면서, ‘학교법인’이라는 특수한 재단법인을 만들게 되었다. 학교법인의 핵심은 재단법인과 학교의 분리다. 학교법인(우리가 일반적으로 학교재단, 사학재단이라고 부르는)만이 법인격을 갖고, 우리가 다니고 일하는 대학은 학교법인에 부속된 ‘시설’(영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 총장은 대학이라는 시설의 총 관리자에 불과하게 된다. 사학재단에 대해 봉건적 집단이다, 가족경영을 한다, 세습을 한다, 사립(私立)일뿐인데 사유(私有)한다는 식의 비판은 물론 일리가 있지만 도덕주의적 비판에 머무른다. 학교법인과 학교의 조직적 관계를 중심으로 대학의 성격을 재고찰할 필요가 있음을 이번 발표는 보여주었다.

재단은 김일환 선생의 정리에 따르면, <‘공익’ 목적으로, 기부자의 ‘증여’를 통해 설립되는 ‘자산’ 기반의 조직이다.> 재단은 사적 성격과 공익적 목적 사이의 긴장관계를 내재화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해방 후 한국에 사립대학이 지배하게 된 계기도 국가의 자원동원 과정에서 지주들의 자원을 활용하여 고등교육의 기반을 구축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고등교육이라는 공익을 위해, 이들이 자신의 자산을 증여하도록 했던 것이다. 사실 공익이라는 것은 경제적 자산에 ‘명예’라는 위광(威光)을 부여한다. 김일환 선생은 다른 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공적 목적을 띤 재산 그 자체인 재단법인에는 애초에 인적 구성원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소유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자 의지’를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특정 집단에 의한 영속적 지배가 나타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2

 

공공성을 가졌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국가에 의한 경제적 특혜가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설립자의 카리스마가 과도하게 부풀려졌고 이는 설립자 후손들의 ‘승계’를 정당화하는 상징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이처럼 상징적 은총을 내려주는 설립자의 카리스마가 물질화된 것이 대학 주변에 마치 왕릉처럼 조성되곤 하는 설립자들의 ‘왕릉’(?)들일 것이다.

사학재단들은 이미 1950년대에 자신들의 자산으로 설립된 대학이라는 시설을 기반으로 영리활동을 시도했던 바 있다(물론 지금도 시도한다). 하지만 이들의 영리활동은 거의 실패하였다(아마 지금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이미 1950년대에 이들 사학재단을 ‘기생적 존재’로 비판하는 담론이 등장한 바 있다. 그래서 학부형과 교수가 재단 이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과 여기서 더 나아가 재단폐지론까지 비등하였다. 원래는 영리활동을 통해 대학에 출연금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으나, 영리활동이 대부분 실패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출연 없는 지배’가 한국 사학재단의 특징이 되고 말았다. 사학재단들은 법인전입금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대학을 아직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정부 재정지원을 당당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이들은 공적인 목적을 가진 고등교육 기관을 시설로, 더 정치적으로 말해 ‘볼모’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같은 지방사립대학의 위기 시대에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해질 것 같다. 대학이 망하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학생, 교수, 교직원, 지역상권 등)이 파국에 이르기 때문에,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학이 설령 망하더라도 어느 정도 그들이 대학을 재산으로 챙길 수 있도록 해주는 시행령도 최근 마련되었다(이 경우 설립자 후손들은 살아남는데, 대학이라는 시설에서 일하던 이해관계자는 직장을 잃거나 학교를 다니기 불편해진다).

 

사실 김일환 선생의 발표를 들으면서, 현 대학체제가 ‘63년 체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3년 ‘사립학교법 제정’을 통해 학교법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 대학 거버넌스는 국가의 공적 개입과 사학재단의 사적영역 보장 간에 모순적 타협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주로 대학이라는 ‘시설’에만 강력히 개입한다. 교육과 연구의 기준(특히 학생 정원 통제, 연구업적 통제)을 마련하고 평가하며 재정지원을 통해 대학을 통제할 수 있다. 반면 사학재단 설립자와 관계자의 자율성은 엄청나게 보장되는 것이다. 이사회 말고 평의원회나 후원회 등 공공성 추구의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직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관선 이사(장)이 파견되더라도 기존의 흐름을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현재 만악의 근원으로 간주되는 1995년의 대학설립 자율화는 63년체제에 부속되는 사건이며 63년체제를 더욱 공고화한 듯하다. 이로써 출연 없는 지배를 하면서도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사학 설립자들이 폭증했다. 또한 정부는 사학재단의 사적 왕국에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다. 손을 대면 노무현 정부 시기의 거대한 ‘사학법 개정 반대’ 파동에서 보듯 엄청난 규모의 사학 카르텔이 가시화되었다. 결국 우리가 ‘대학 민주화’라는 말로 지향하는, ‘학자들의 결사체(association)’로서의 대학이라는 이상은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그야말로 유토피아적 이상에 그치고 만다.

학교법인과 대학을 분리하여 학교법인에만 법인격을 부여하던 이러한 사립대학 체제는 김일환 선생의 말대로 ‘압축 성장’ 시대의 산물이었다. 현재 사립대학은 국가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민간에서 동원하는 구체제의 기능이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서 수년전 ‘공영형 사립대’라는 대안이 나오기도 했으나, 흐지부지 되었다. 공영형 사립대는 애초부터 국가가 재정투입을 통해 사립대학을 관리하는 모델이므로, 사실 국립대학을 늘리는 경로의 중간단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학의 공공성을 위해서는 식민지 시기 민립대학 운동이 나름대로 그 시대에 맞는 대학형식으로 기능했듯이,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의지’도 대학에 담길 수 있는 법적 사회적 형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소유주 없는 재산”인 재단이라는 형식을 폐기하기보다는 커먼스(commons)를 담도록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김일환 선생은 제안하고 있다.

 

 

3. 흥미로운 토론들 : 사립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사립대학의 커먼스를 위하여

 

지정 토론자인 한국에너지공과대학의 배소현 선생님과 필자의 토론시간에는 먼저 한국 대학 관련 자료의 미비성에 대한 아쉬움이 공유되었다. 80년대 이전에는 교육부 통계나 대학별로 생산한 서류와 역사편람 모두 빈약한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90년대가 지나면 오히려 혼란스럽게도 대학 관련 자료가 너무 많아진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대학체제 간 국제 비교의 필요성도 제기되었다. 두 번째로, 해방 이후 일본과 한국 대학체제의 차이점이 설명되었다. 일본에서는 재단과 학교가 법적으로 일체화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재단과 학교가 분리되어, 대학이 학교법인재단의 ‘영조물(피조물)’처럼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상대적으로 교수조직으로서 평의원회가 의무 설치되는 등 일정 정도 권한이 부여되었다. 반면 한국의 63년 체제에서 평의원회는 유명무실해지고 대신 국가권력 개입의 틀이 형성되었다. 재정지원과 교육 규제뿐 아니라 임시이사 파견을 통한 통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국가에 의한 공공성만이 허락되었으며, 교수, 학생, 학부모 등 포괄적인 이해관계자의 의지가 반영되기는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지정 토론 시간 이후에도 흥미로운 질문과 쟁점들이 연이어 제기되어, 총 발표와 토론 시간은 2시간 반 정도나 되었다. 김일환 선생의 향후 연구주제가 10여 개 이상 나왔다는 농담도 나올 정도였다.

서울대(명예교수)의 최갑수 선생은 사립대학이 미국 종파 대학에 기반한 모델로 간주되어온 기존의 대학사 서술방식과 일제 식민지 시기 재단법인으로서의 대학 모델을 역사적 지배력을 강조한 김일환 선생의 서술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김일환 선생은 일제 시기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대학설립 흐름을 총독부가 자신들의 법제로 포섭하였으며 따라서 일본의 법인체제가 현 한국 사립대학 이해에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교육이나 커리큘럼은 미국 모델일지라도, 지배구조의 측면에서 보면 법인체제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존 대학사 연구를 혁신하는 새로운 시각이라고 할 수 있고, 향후 연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기존 교육학계처럼 대학이 학교법인의 영조물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은 대학 연구들는 큰 한계를 가진 것이라 하겠다.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커먼스의 문제로 나아갔다. 지배구조의 문제를 반영하는 대학분규의 과거 사례도 언급되었다. 특히 가톨릭대의 정영신 선생은 대학분규시 학생들을 지배체제에서 어떻게 호명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거 대학분규들에서 대학측과 재단측은 학생들을 ‘일시적 사용자’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는 것이다. 대학이 영조물이자 시설로 간주된다면 50년대~60년대에 미국이 한국의 대학시설에 대한 원조를 상당히 많이 했던 사실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탐구할 필요가 있다고도 언급했다.

평택대의 선재원 선생은 김일환 선생의 연구가 한국 사립대학의 ‘사사성’과 ‘출연없는 지배’를 키워드로 뽑아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설립자의 의지’와 ‘공공성’의 관계에 대해서 지적했다. 설립자라면 교비횡령을 해도 용인하는 관행이 있어서, 설립자가 횡령한 교비를 이후에라도 납입하면 설립자의 의지(?)를 존중해서 법정에서 봐준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박배균 선생은 서울대 법인화 문제를 김일환 선생의 논의와 연결시켰다. 서울대 법인을 지방자치 단체와 유사한 지위를 가진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서울대는 법인화 이후 새로이 증가된 세금을 처리했다는 것이다.

경희대의 김선일 선생은 사립이 지배적인 것과 법적 구조 모두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 유사한 구조지만, 중등교육은 국가가 일정 정도 재단의 권력을 누르고 관리하는 것에 반해 왜 대학은 그렇지 못한지 질문하면서, 중고등학교는 망하더라도 뒤처리를 정부가 할 수 있는데 대학은 망할 경우 폐교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 지적하였다. 따라서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둘러싼 부모와 여론의 ‘사회적 압력’이 중요한 변수가 아닌가라고 질문하였다. 김일환 선생은 80년대~90년대 이후 사회적 압력의 문제는 연구를 하지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해 필자는 결국 정부 재정투입의 차이가 아닐까 지적하면서, 사립 중고등학교 교원은 급여를 국가로부터 받지만, 대학교원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일례로 들었다. 국가장학금 등 대학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은 과거보다 훨씬 증가했기에, 이제 중고등학교처럼 사학재단을 국가가 좀 더 강력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이러한 시기적 특성을 포착하여 사립대학에 커먼스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사립대학의 개혁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박배균 선생은 공영형 사립대 방안이 파산한 사례를 공유하면서, 국가와 사학재단의 협조, 유착, 적대적 공존이라는 그간의 대학체제 때문에 공영형 사립대 방안이 좌초되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 차라리 재단 자체를 커먼스화하는 방안이 낫지 않을까라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누가’ 재단을 공공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유재산의 논리가 너무 강한 한국에서는 국가적 공공성을 강화하는 논리가 대중적 설득력을 얻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학이 학교법인의 영조물로 간주되는 법체제 내에서, 소유권과 별도로 대학의 운영을 독립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 즉 법인을 대학운영의 실질에 개입할 수 없는 명목상의 위상으로 머무르도록 하자는 방안이 나왔다. 재단의 ‘소유권’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일환 선생은 이번 발표를 통해 많은 숙제를 안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이후 열심히 연구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연구자의 집에서는 새로운 연구가 진전될 때마다 김일환 선생을 불러다 발표를 듣기로 하였다.

  1. 이준희, “대대손손 세습과 특혜‥사립대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공개합니다”, MBC, 2024.1.27 https://v.daum.net/v/20240127101006994[]
  2. 김일환, <사립대학 재단 너머로 들여다본 사립공화국>, 교수신문, 202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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